제 20회 김수근 건축문화상 경영위치 수상소식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http://www.buildersdaily.co.kr/news/new.html?IDX=147826

건축 ‘혼’ 좇아 30년, 마침내 ‘상’을 받았다

정선군 보건소로 제20회 김수근 문화상 수상 김승회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두보의 시를 좋아하고 미술에 소질이 있는 까까머리 고교생이 있었다. 학창시절 클럽 활동은 문예반과 미술반. 둘 모두 놓치고 싶지 않았던 그는 대학 진학 때 건축학을 택했다. 서울대 건축학과 81학번. 건축사가 되기로 결심을 한 지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주인공은 제20회 김수근 문화상 수상자 김승회(46) 서울대(건축학) 교수. 그와 대학 후배 강원필(45) 경영위치 건축사무소 소장이 공동으로 제작한 강원도 정선군 보건소(2007년 완공)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14일 설계사무소 공간 사옥 마당에서 진행된 시상식에서 그는 감격의 소감을 토해냈다. “내가 이 상을 받아도 되는지 선배 건축가들에게 죄송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신기하다.”

김수근 문화상은 한국 현대 건축을 논할 때 첫머리에 나오는 현대 건축의 거장 고(故) 김수근(1931~1985) 선생을 기려 만든 건축상이다. 해마다 단 1명에게만 선정·수여하는 이 상은 상금의 규모를 떠나 김수근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건축사들에게는 가슴 설레는 최고의 영광으로 통한다. 그는 “내가 지금껏 해온 100여 개의 건축물은 김수근 선생님이 던진 화두에 대한 답을 구하는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고 김수근 선생과의 추억

그는 수상 소감으로 “신기하다”를 연방 외쳤다. 마치 엄마 뱃속에서 나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어린애처럼. 그만큼 자신의 건축가 인생에서 김수근이라는 거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기 때문이리라. “요즘 골프로 말하자면 박세리와 박세리 키즈의 관계라고 할까. 내가 대학원을 다니던 때 돌아가셨고, 그분과 직접적인 인연을 맺은 적은 없었지만 건축가의 길에 들어서면서부터 동경의 대상이었다. 서울대 재학시절 김수근 선생님의 혼을 느끼기 위해 괜히 그분이 설계한 음대와 미대 건물에서 청강을 하기도 했다.”

그는 1989년 미국 미시간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시카고에 위치한 세계적인 건축설계사무소 SOM에서 근무를 했지만 이내 접고 귀국했다. 김수근 선생의 뜻을 이어 받아 ‘좋은 건축,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하나의 공간을 책임지고 완결하는 건축’을 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기 때문이다.

귀국 후 서울건축에서 잠시 일을 한 뒤 1995년 대학 후배 강원필과 경영위치라는 건축사무소를 차렸다.

김수근은 남산 자유센터, 한국일보사, 공간사옥, 올림픽주경기장, 문예진흥원 문예회관, 경동교회, 경복궁 지하철역사 등 자신의 건축물을 통해 후배들에게 던진 화두는 ‘우리의 전통을 어떻게 현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이 물음에 30여 년 후배인 김승회 교수가 내놓은 답은 ‘동시대’였다. “김수근 선생님이 과거의 건축을 모방하라는 뜻은 아닐 게다. 전통이라는 것은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고려청자나, 조선백자가 현재 가치를 지니는 것은 당대 최고의 도자기 기술의 집합체였기 때문이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기술과 요구를 접합시키는 건축. 이것이 바로 선생님이 던진 화두에 해한 내 해석이다.”



보건소의 개념을 바꾸다

그가 자신의 사무소를 열고 제일 먼저 착수한 작업은 보건소 건축이었다. 1995년 개업하자마자 보건복지부의 공공보건 의료기관 표준설계 현상공모가 있었다. 경영위치의 계획안은 국내 보건소 설계의 가이드라인을 위한 5개 행정단위별 공모에 모두 당선됐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설계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정선군 보건소까지 그가 건축한 전국의 보건소는 40여 개에 이른다.

그가 설계한 보건소는 단순히 건강을 체크받고 약을 타 가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과거 보건소가 지닌 이미지를 떨쳐내고 싶었다. 단지 환자와 보건을 관리하는 행정공간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공간, 공동의 공간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믿었다.” 각 지역에 적합한 공공 편의시설 프로그램을 추가했다. 스포츠센터나 도서관, 강당은 기본이다. 충남 아산시 보건소 내에는 온천수로 끌어들인 노약자 전용 목욕탕도 있다. 또한 담장을 없애고 주민들을 위한 널찍한 오픈 공간을 마련한 것도 특징이다. 마을의 잔치가 있는 날 이곳은 행사장으로 바뀐다.

“처음에는 ‘왜 담장을 없애냐, 일하기 불편하다’는 불만이 나왔다. 보건소를 찾는 주민들도 어리둥절해했다. 그러나 건물을 경험하면서 평가가 달라졌다. 이제 보건소는 지역의 커뮤니티센터로 자리잡았다.”

보건소뿐 아니다. 병원·학교·교회 등 그는 자신이 설계하는 건축물마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2007년 한국건축가협회상 베스트 7에 뽑힌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는 각 층마다 서로 이어지는 테라스를 뒀다.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영동교회는 교회를 통과하는 지름길을 만들어 종파를 떠나 주민들에게 친숙한 공간으로 탄생시켰다.

 

공간 중시, 디자인이 없는 디자인

그의 건축관은 그가 차린 회사 이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경영위치(經營位置)란 동양화에서 육법 중 하나로 화면을 살리기 위한 배치법을 일컫는다.

마찬가지로 그는 건물을 설계할 때 ‘지역성’이라는 가치를 중시한다. “우리가 볼펜은 길고 날렵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듯 도시나 건축에서도 자신이 그 자신이게 하는 요소들이 있을 때 바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주머니의 송곳처럼 외관상 홀로 돋보이는 건물이 아닌, 다른 건물과 조화를 이뤄 보는 이로 하여금 ‘이 건축물이 이곳에 이렇게 있을 수밖에 없도록’ 느끼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그는 건축을 “삶을 담는 그릇”이라고 표현했다. 진실한 삶이 깃든 공간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디자인을 크게 중시하지 않는다. 스스로 “디자인이 없는 디자인을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디자인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디자인은 필요한 요소이지만 그 자체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 건축물은 삶을 조직하는 장치다. 삶과 진실된 관계를 맺을 때, 건축주와 대지, 그리고 주변환경의 요구에 반응했을 때, 비로소 훌륭한 건축물이 탄생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설계부터 심혈을 기울인다. 설계 전 현장답사를 6~7번이나 한다. 그의 세밀한 설계도면 및 자료를 보고 함께 일한 삼성건설 관계자는 “설계도가 삼성전자 반도체 설계도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건축가들에게 여지를

보건소를 비롯해 병원·교회·학교 등 14년 동안 100여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그는 가장 애착이 가는 건축분야로 주택을 꼽았다. 그가 추구하는 가치인 ‘진실된 삶’이 구현되는 건축물이라는 이유에서다.

아파트에 대한 시각도 비슷하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는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의 산물이다. 2만~3만 달러 시대의 아파트는 달라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미래의 아파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도시 중심에 위치해 시티 라이프를 맘껏 즐기는 것이고, 나머지는 도시 근교에서 자유로움을 향유하는 것이다. 현재 짓고 있는 아파트도 비슷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경희궁의 아침’ 같은 주상복합 아파트가 전자의 예라면, 분당이나 용인 수지 등에 있는 타운하우스는 후자이다. 다만 건축가들이 조금 더 여유로운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시공사나 시행사들이 가능성을 열어 줬으면 하는 마음이다.”

현재 아파트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 중이라는 그는 “언젠가 마을을 통째로 설계하는 것이 최고이자 최후의 꿈”이라고 했다.

정회훈기자 hoony@ 사진=안윤수기자 ays77@

작성일 : 2009-06-15 오전 8:58:40
분류 :
건축
옵션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