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건축문화 5월호에 실린 '한옥의 미래' 를 발췌하여 올립니다.

The future of Korean traditional houses  한옥의 미래

 


한옥과 현대건축물의 설계를 놓고 볼 때 그것은 어떤 차이가 있으며, 한옥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리고 자신의 작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김용미: 한옥은 설계하기가 쉽다. 거기에는 전체를 칸으로 구성하는 일정한 원칙이 있어 설계는 그것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한옥은 설계하기가 어렵다. 한옥의 칸은 옆으로는 연결해서 늘려나갈 수 있지만 앞뒤로는 지붕의 한계 때문에 기껏 두 세 칸 이상 계획하기가 어려워서 건축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용하려면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한옥 설계는 까다롭다. 이 사회에 속한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한옥스러움’ 이라는 것이 있어서 건축가가 자기 창작의지대로 마구 바꾸어 설계할 수 없다. 그 ‘한옥스러움’이란 것은 누구나 따라야 하는 문법처럼 논리적으로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분명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한옥이다 아니다’라는 논란에 휩싸이거나 ‘이상한 한옥’이라는 딱지가 붙을 수 있을 만큼 강제적이다. 한옥설계는 인간적 척도와 비례감이 중요한 아주 섬세한 작업이다. 거기에 작가적 개성은 필요 없지만 대신에 한옥만의 품격을 만들어내는 고도로 훈련된 감각이 필요하다. 건축가의 입장에서 보면 몰개성의 건축 그러나 품격을 만들어 내기는 무척 까다로운 건축이 바로 한옥이다. 한옥은 늘 같은 것을 반복하는 작업이다. 그러나 반복되는 것 같이 보이는 속에도 변화는 무한대로 전개되는 것이 바로 한옥의 묘미이다. 현대건축이 무한한 자유 속에서 헤매는 창작의 장이라면 한옥은 주어진 규범 안에서 이루어 내는 섬세한 작업이다. 한옥은 표면의 질감까지도 중요한, 결을 만드는 작업이다. 한옥에서는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든다. 현대건축과 같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접근으로는 한옥에서 느껴지는 맛을 낼 수가 없다. 한옥작업을 하다보면 같은 구성의 집도 얼마든지 결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현대건축을 설계할 때에는 놓치는 것들을 한옥을 설계할 때에는 챙기게 된다. 지붕 높낮이, 합각의 크기, 벽선, 기둥의 굵기, 벽의 문양, 재료의 질감, 문살의 비례, 작은 차이가 큰 차이로 느껴지게 하는 작업은 어렵고도 끝이 없다.

 

전봉희: 한옥은 구축의 방식에 있어 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제약을 가지고 있다. 경사진 기와지붕을 받치는 상부가구와 연결되어있는 평면 구조가 그것인데, 네 모서리에 기둥을 배열한 사각형의 칸을 단위로 해야 하며, 그 때 기둥 사이의 거리에도 일정한 기준치수가 존재한다. 또한 한옥은 바닥과 벽, 천장의 마감과 전체적인 외부 형태에도 구축의 방식과 연관되고 오랜 시간 축적되어온 범례가 존재하기 때문에, 새로 짓는 한옥이라고 해서 이를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렵다. , 한옥은 구조와 의장에 있어서 일정한 법식의 규준이 늘 작용하고 있는 가운데 설계안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점에서 고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전주의 건축이 그렇듯 규준의 존재가 상상력의 제한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모두에게 익숙한 형태와 구성에 작은 변화를 줌으로써 보다 극적인 변화를 맛보게 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조정구: 나 스스로는 한옥을 통해 집과 사람이 관계를 이루는 거주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건축이 구축되며 공간이라는 것이 구해지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그 안에 있는 마당과 자연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가능한 나의 작업을 이러한 한옥에서 얻은 깨달음의 연장선에서 하고자 한다.

 

최욱: 건축을 시대의 인식을 담는 관념의 차원에서 보면 한옥은 지역적 건축에 속하나 포괄적 범위의 문화현상으로 볼 경우 현대건축물과 차이를 두지 않는 것이 옳다. 다만 내적 완결성이 뛰어난 건축 형식면에서 일반적인 지역적 건축과 다르며 또한 단순히 기능을 극복하기 위한 도구가 아닌 사고를 위한 적극적인 수단으로 내세워진 점에서는 현대 건축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본다. 한옥은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지역적인 건축에 속하나 개인의 사고를 인문학적으로 반영한 그 내면의 철학은 근대화가 시작된 르네상스 건축과 맥을 같이 한다. 한옥에서 배운 점은 이성적인 유클리드 기하학의 엄숙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점이며 현상학적인 측면에서 재료와 물성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든 점이다.   

 


한옥은 물리적 구조, 공간 구조, 재료적 특성 등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건축이다. 그 요소들은 새로운 공간을 위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도 한다. 어떤 잠재성을 읽고 있는가?

 

 

전봉희: 한옥의 발달 과정은, 온돌과 마루, 부엌 등의 세 가지 주요 공간구성요소가 마당이라고 하는 매개체를 통하여 상호 긴밀하게 통합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공간구성요소 간의 통합이 이루어진 조선후기에 비로소 우리의 전통 한옥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후 갑작스런 서구 건축의 도입으로 역사적 발전과정은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가장 큰 변화는 목조를 주요 골조로 채택하고 경사지붕을 올리는 목골 시스템이 조적조의 벽에 슬래브 지붕을 덮는 구조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생겨나는 구조적인 차원의 변화와, 도시인구 증가에 따른 고층고밀화의 경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목골조가 조적조로 대체되는 과정은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진행되며, 이 과정에서 내화의 성능이나 재료의 수급 등이 주로 문제가 되었는데, 현시점에서 재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 목재가 가지는 여러 가지 장점이 부각되면서 이 부분의 단점은 극복되고 있다. 따라서 한옥의 미래 확산은 고밀화에 대한 대응 여부에 달려있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현재 한옥의 장점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 중 많은 부분은 지면에 접하고 내외부 공간사이의 관계가 좋은 단층집이라는 점에서 비롯한 것으로, 한옥 전유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좀 더 많은 노력을 한옥의 고층화 고밀화에 기울여야 한다.


조정구
: 특히 요즘 관심이 많이 가는 것은 한옥의 구조이다. 새로운 구조적 변화가 이제까지 거리가 있었던 현대의 기능과 내용들을 담아낼 수 있으며, 건축의 세계를 넓힐 수 있으리라 보고 있다.

 


현대에 지어진 한옥 중 인상 깊게 생각하는 작업은 무엇인가
?

 

 

김용미: 가장 인상 깊었던 한옥작업은 올 초에 완공하여 개관한 남산 한옥마을 내에 있는 전통음악공연장이다. 그것은 300석 공연장이라는 현대적 기능의 공간과 한옥을 접목시키는 것이었는데, 덩어리가 큰 공연장은 지하에 넣고 지상에는 한옥만 두어 전통한옥의 멋스러움을 그대로 살렸다. 안채 대청으로 들어가면 양쪽에 지하까지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대청 뒤 정원이 화계로 처리되어 지하까지 내려가기 때문에 지하 계단과 지하공연장 로비는 여전히 지상처럼 느껴진다. 정원에서 보면 정원이 지하까지 내려가기 때문에 1층 대청마루는 누각처럼 보이게 된다. 그동안 지어진 국악공연장이 예외 없이 우리 한옥의 맛과는 거리가 있는 콘크리트 돌집인 것이 아쉬웠는데, 순수 목조로 된 한옥으로도 국악 공연장 같은 규모의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 보람 있었다. 물론 이 전통공연장의 경우 대규모 공간을 지하에 넣고 지상에는 한옥만을 두어 본격적으로 현대건물과 한옥을 결합하였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을 한옥으로 거대한 프로그램을 담을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한옥과 현대건축을 결합하는 시도와 한옥에 여러 가지 기능을 담는 시도를 다각도로 한다면 여러 방안이 나올 수 있고, 또 이러한 시도는 한옥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본다.

 

전봉희: 아직 지어지지는 않았지만, 최근 문화관광부의 한옥건축활성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계안이 도출된 서초구 어린이도서관 개축안(구가도시건축 설계)이 기대를 끌기에 충분하다. 이는 도심 내 아파트 밀집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3층의 근린생활시설의 2층과 3층을 각각 한옥적인 공간으로 만든 것인데, RC조의 구조시스템 속에 한옥이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새로운 시도이다. 구체적으로는 최상층인 3층에는 정통적인 한옥의 구조가 올라가고, 중간층인 2층에는 마당 없이 벽면과 천장면, 바닥면의 구획과 의장을 통하여 한옥적 공간의 특성을 유지하려고 시도하였다. 입면에 있어서도 벽체와 지붕의 처마가 만나는 선의 처리, 개구부의 처리 등을 통하여, 기준층의 모듈을 유지하면서 한옥적 입면요소를 구사하려 하였다. 이와 같은 실험적 대안들은 한옥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으로 이미 존재하는 한옥의 장점을 그대로 복원하는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적용이기 때문에 주목받아야 하고 또 더 많은 시도들이 뒤따라주어야 할 것이다.

 

조정구: 미대사관저, 두가헌, 목수들이 직접 짓는 지방의 2층 한옥들이 인상 깊다. 미대사관저는 한옥의 구조적 확장이 이제까지의 전통적 공간구조를 벗어나 어떻게 다른 스타일의 생활방식(서구적 양식)을 담아내는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두가헌은 한옥구조가 가진 투명함을 세련되게 다루었다고 느꼈다. 한옥의 구조적 틀을 잘 지켜내면서도, 보이지 않게 보조적 공간을 구성한 것이 인상 깊었다. 지방의 2층 한옥들은 비록 거칠고 익숙하지 않은 형태이지만, 사람들이 요구하는 다양한 삶의 내용을 전통적 구법으로 담는 과정에서 어떤 것들이 지켜지고, 새로운 것들이 구현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작업으로 말한다면 120도로 결구하여 다양한 대지조건, 조망여건에 맞게 펼쳐갈 수 있는 방사형 한옥 작업인 인제 미명제가 인상 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옥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으나 그 현실적 삶의 불편함 때문에 한옥에 사는 것을 포기한다. 삶에 대한 본질적 태도의 수정 외에 외부환경적으로나 건축기술적으로 이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전봉희: 한옥의 불편함은, 한옥 자체에 기인한 부분과 한옥이 자리하는 주거지의 문제에서 기인한 부분으로 나누어 보아야 할 것이다. , 현재 서울시민들이 강남의 아파트촌을 선호하는 까닭은 그것이 아파트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더 큰 이유는 그것이 강남에 있어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시점에서 한옥의 장단점은 그 비교대상을 양옥의 단독주택으로 삼아야 공정한 것이 될 것이다. 양옥과 비교하여 한옥의 단점은? 이라고 질문을 바꾼다면 이미 북촌에 지어지고 있는 한옥들에서 보듯이 별로 떠오르는 것이 없다.

 

조정구: 한옥계획 및 설계기술의 발전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 본다. 더불어 시장의 확대가 이들 시도에 대한 검증의 속도를 가속시켜 살기에 편한 공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최욱: 동서양의 모든 오래된 집들을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불편하다고 할 수 있는데, 한옥 역시 예외는 아니다. 주거란 삶과 함께 성장하고 문화와 함께 변하는 것인데 한옥은 그 진화와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아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옥은 불편 한 것이 아니라 그 건축에 맞는 삶의 방식이 있고 현실의 기능과 요구에 적응 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한옥을 건축의 전형으로 보고 그 변화에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있는데 경직된 태도는 창의적인 발전을 가져올 수 없기 때문에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고 본다. 사고를 바꾸면 기술적으로 해결 안 되는 것은 없다. 한옥의 본질이 창호와 기와라는 형태에 있다고 믿지만 않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한옥의 본질은 장소를 해석하는 탁월한 목조 건축의 한 유형으로 지역적 건축이나 역사의 산물만이 아닌 장소와 사고가 만들어낸 한 문화의 성숙된 경지이다. 성숙된 문화의 사고를 고착시키는 어리석음이 있다면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개량한복처럼 현재 사용자에게 편리하도록 고친 개량한옥은 한옥이 갖는 고유한 아름다움을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그 전통성을 훼손한다고 평가받는다. 전통의 원형은 어떤 모습이며 어떻게 지켜져야 보는가?

 

 

김용미: 개량한옥이 한옥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살리지 못한다고 평가받는다면 그것은 전통성을 고수하느냐 훼손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옥의 품격문제이지 전통성의 문제가 아니다. 전통에 있어 원형이란 없다. 한옥의 고유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봐야한다. 한옥은 수공예적인 멋스러움이 주는 맛이 중요하기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전체적인 짜임새와 비례감이 중요하다. 개량한옥은 기본적으로 기계 가공된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수공예적인 멋을 낼 수가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옥의 짜임새와 비례감을 놓치지 않는다면 개량한옥도 충분히 아름다운 품격을 유지할 수 있다. 한옥에서 비례감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요정집 같은 한옥과 단아한 한옥을 비교하면 금세 알 수 있다. 개량한옥도 설계자의 손길에 따라 아름다울 수도 어설플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정부에서 나서서 한옥 현대화, 한옥보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들었다. 한옥보급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가격이라 여기고 한옥의 가격경쟁력 강화를 위해 많은 연구가 뒤따르고 있다. 특히 전라남도는 도에서 나서서 한옥 공사비를 평당 400만원대 이하까지 가격을 낮추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사업도 상당히 진척되고 있다고 한다. 한옥의 가격경쟁력이 커진다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에는 아름다운 한옥의 품격을 유지해야한다는 조건이 뒤따라야 한다. 가격만 생각하고 저가로 지어지는 한옥이 앞으로 10년 이상 계속 지어진다면 한옥의 브랜드 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대중화된 저렴한 한옥도 품격은 유지되도록 아름다운 한옥에 대한 교육을 통해 유능한 전문가를 양성하는데도 정부가 나서야 한다.

 

조정구: 무엇보다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심도있게 그리고 내실있게 다루지 않으면 그것이 개량 한복이건, 개량 한옥이건 이 시대 속에 선택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과 배제의 과정 속에서 한옥이 진화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생각하는 원형은 어떤 이미지나 형식이기 보다는, 태도나 바탕이라 할 수 있다. 땅에 맞추어 집을 적당하게 놓는 태도, 건물의 안 그리고 밖으로 마당을 두는 그런 구성의 바탕 이런 것들이다.

 

최욱: 미스나 르 꼬르뷔제의 건축은 서양전통건축의 모방과 해석의 변형에서 출발한다. 한옥의 원형은 없다. 한 전형을 가진 건축이 아닌 중국에서 유입된 목구조의 끝없는 변형과 새로운 지형에의 적응 그리고 생활의 각 모습을 반영하면서 성장해온 조선시대의 건축이다. 한옥의 본질에 대한 재해석과 창의적인 적용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서울의 북촌 등지에서 행해지는 존재하지도 않는 원형을 설정해서 임의 모방하는 건축행위는 경관을 위한 특이한 규범으로 기록 될 수 있지만 건축적으로는 의미가 없다. 우리 문화에 대한 갈망에 시각적 만족을 위한 시대적인 필요에 의한 처방이라고 본다. 한옥은 장소의 미학을 발견하는 근원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며 특히 나에게 한옥이란 장소를 점유하는 방법을 아는 아메바 같은 형태의 무기질로 인식된다. 한옥이 기와나 창호가 아름다워도 그것만으로써는 한옥의 그 미학적 본질에 다다르지 못한다. 악기가 연습을 필요로 하듯 한옥은 부단한 노력으로 그 미학적 수준에 맞는 현대적 해석을 필요로 한다. 

 


한옥과 현대건축의 스케일은 다르다. 최근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도량체계를 금지시키고 국제표준으로 도량체계를 공식 변경하여 전통건축공사를 진행시 현실적 어려움이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또 서구화된 삶의 양식으로 인해 한옥의 스케일에 대한 연구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것 같다. 한옥의 스케일에 대한 생각은?  

 

 

전봉희: 이미 19세기 후반 이후 지어지는 한옥들에서는 스케일의 적극적인 조정이 보여진 다. 또 전통시대의 한옥만 하더라도 한 칸의 규모가 작은 것은 5척 정도에서부터 큰 것은 10척 이상까지 형편과 사정에 따라 다양한 스케일이 적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적 삶에 필요한 것이라면 당연히 스케일의 조정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정구: 한옥은 앞으로 프로그램이나 기능, 또는 담고자 하는 삶의 스타일에 따라 다양한 스케일을 가질 수 있다. 서구화된 삶의 양식이 모든 한옥에 적용되어야 할 절대적 요구사항이 아니며, 한옥의 인간적 스케일이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지만, 모든 경우에서 고집되어야 할 특성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의 공간문화와 도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한옥건축의 진흥을 위한 논의가 정책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옥이 우리 도시에 존재하며 그 문화적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가?

 

 

김용미: 한옥문화를 진흥시키기 위해 한옥보급이 시급한 것이 아니다. 한옥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더 중요하고 또 더 어려운 일은 현대 기술과 재료로 시공하는 수많은 건물에 전통의 맛을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입면구성, 벽면의 질감, 재료의 결, 간살의 비례. 창호의 구성 등으로, 현대 건축물에 전통의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인데 인사동과 삼청동에서 좋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그것은 간판, 길거리의 편의시설물, 바닥포장, 볼라드, 조명등과 같은 도시디자인 영역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적어도 경주, 부여, 공주와 같은 고도, 아니면 서울과 같은 현대도시의 원도심 역사지구에 적용되는 도시디자인 가이드라인은 전통의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그 지역은 별도의 지구단위 계획으로 현대생활을 유지하면서도 역사문화지구로서 성격이 유지되도록 관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사회가 이제까지 시도해 왔던, 단순히 형태나 문양을 차용하여 디자인하던 수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다양한 시도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이것을 위해 이 사회에 이 문제를 고민하는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많아져야 한다. 한옥을 알고 한옥을 응용할 줄 아는 건축가가 많아져서 많은 실험작들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다양한 시도가 있을 때 한옥이 발전하는 것이지 한옥이 예나 지금이나 변할 줄 모르는 원칙만 고수한다면 그것은 언제까지나 옛것일 뿐 이 시대에, 이 땅에서 생명력을 갖기는 어렵다. 우리사회는 한옥전문가를 많이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한옥전문가는 어떻게 키워지는가? 그것은 전국 곳곳에 있는, ‘한옥 전 과정 몇 주’ 라는 팻말을 걸고 있는 몇 개 학원과 같은 ‘학교’에서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한옥전문가는 목수가 아니다. 앞서 말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능공이 아니라 훨씬 더 창의적인 전문가-건축가, 디자이너-가 필요하다. 그것은 궁극적로는 대학교에서 교육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옥문화 진흥을 위해서는 각 건축학과가 변해야 한다. 학교에서 한옥은 역사로서가 아닌 설계과목으로 가르쳐져야 한다. 건축과 학생이 한옥을 모르는데, 한옥이 우리 건축문화의 한 축으로 꽃피울 수 있겠는가?

 

전봉희: 너무 포괄적인 질문이지만, 몇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접근할 필요가 있다. , 한옥이라고 할 때 그 대상이 되는 한옥은 화자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다. 때문에 이에 대한 정의가 우선 필요하며, 그러한 정의에 따라 접근하는 태도 역시 달라질 것이다. 한옥의 가장 좁은 범위는 문화재로서의 한옥이고, 이는 이미 문화재보호법에 의하여 정부차원의 보존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원형 보존을 원칙으로 한다. 이는 도시 혹은 농촌에 점점이 존재하며, 학술적 관찰의 대상이 되고 한옥의 발전적 대안들을 제시하는데 원형적 근거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한옥의 가장 넓은 범위는 한국인 살고 있는 현대의 도시주거 혹은 도시건축의 총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똑같은 구조체제를 이용하고 있지만, 서울의 아파트와 동경의 아파트는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는 결국 한국인의 삶의 방식에 기인하는 것이며, 따라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이미 서울은 서울이며, 한국적인 특색은 충분하다. 문화를 만들고 조성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한옥진흥과 관련된 각종의 사업과 정책들은 그 중간 범위의 어떤 부분을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목조를 주요 구조체로 한다든지, 전통 한옥의 공간의장을 사용한다던지 하는 식으로 보다 적극적인 한옥요소의 채택을 요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공의 역할은 기술적, 제도적 기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아주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오랫동안 한옥이 건축분야에서 소외되어 왔기 때문에, 기술적 표준을 만들고, 디테일의 정보를 제공하며, 각종의 법규상 한옥에 불리하게 되어있는 요소들을 제거하는 일이 필요하며, 이와 같은 바탕 위에 실제의 소비자와 공급자(설계자와 시공업자)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 필요하다.

 

조정구: 기존 한옥의 보존과 활성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한옥은 개체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집합된 가치 혹은 도시의 기억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외부적인 한옥의 상태만으로 활용 가능성을 타진하는 편견부터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 서울을 비롯한 각 도시의 역사도심지역에 한옥을 중심으로 한옥과 다른 양식의 저층건축이 혼재할 수 있는 2층 이하의 저층 보존 지역설정을 제안하고 싶다. 넓은 범위의 저층보존지역 설정은 한옥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거주하기 좋은 환경, 걸어 다니기 좋은 환경을 만듦으로서 주거, 상업, 문화가 생성되는 기본 바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옥건축 진흥을 위해서는 한옥을 설계하고 지을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제도화된 건축교육도 필요하다. 장인으로부터 땀 흘리며 현장에서 배워야 하는 한옥건축 특성상 현대화된 교육모델을 찾기는 쉽지 않다. 현재의 대학 건축교육 시스템에 어떻게 접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가?

 

 

김용미: 앞에서 언급했지만 한옥설계와 한옥스러움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아는 건축가와 디자이너를 양성하기 위해 대학에서 한옥을 설계과목으로 가르쳐야 한다. 또한 정부는 부여에 있는 전통문화학교 같은 수준의 한옥기능인학교를 설립하여 수준 높은 기능인을 양성하는데 앞장 서야 한다.

 

조정구: 가장 좋은 방법은 한옥 스튜디오를 가동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여건에서 한옥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것이 무리일 수 있으므로, 건축역사, 구조, 설계 스튜디오가 일정한 대상이나 주제를 가지고 학생들과 단기 혹은 학기 단위의 스튜디오를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본다. 실무적인 인재의 양성은 병원 설계와 마찬가지로 대학원 그리고 관련 설계사무소를 다니며 습득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옥의 미래에 대해 한국 건축가로서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가?

 

 

김용미: 한옥의 바람직한 발전방향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고품격 한옥생산에 관한 것이다. 손작업의 섬세함과 거침, 재료의 질감과 자연미가 살아있는, 집 자체가 예술이 되는 고품격 한옥생산은 한옥의 최고급 브랜드가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다. 정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품으로서 최상급 한옥생산이 계속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일본에서 전통여관이 일본의 대표 문화상품이듯이 최상층 시장을 겨냥한 한옥 숙박시설을 우리의 대표 문화상품으로 육성하는 방안이 필요하며 호텔 부속시설로서 게스트 하우스나 찻집, 정부지자체의 영빈관, 전통예술 공방 등 공공 또는 민간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한옥을 생활 속에서 즐기는 분위기를 조성하는데도 마케팅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한옥 현대화에 관한 것이다. 현대적인 생산방식을 도입하여 보다 저렴하고 편리한 한옥을 생산하여 한옥이 좀 더 보편적인 주거형식이 되도록 노력해야한다는 것은 오늘날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한옥 대중화를 얘기할 때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그것이 가공된 자재를 사용하는 개량한옥이어서 비록 수공예적인 맛은 최고급 한옥을 따라갈 수 없다지만  아름다운 한옥의 비례감으로  그 품격만은 잃지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가 가장 어려운 작업인데 학교나 문화센터 같은 소규모 건축물, 즉 현대적인 기능과 생산방식에 의한 건물에 한옥스러운 느낌이 스며들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에는 많은 건축가들의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한옥은 아직까지는 일부 소수의 계층이 즐기는 문화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한옥문화를 즐기게 될 때 진정한 한옥문화의 부흥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아파트도 전통적인 사랑방 갖기가 일반화될 정도가 된다면 한옥은 여러 방면에서 우리 삶 속에 들어오게 될 것이고 당연히 한옥을 응용한 여러 시도들도 뒤따르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한옥문화의 부흥이며 우리문화의 정체성 확립에 기여하는 길이다. 

 

정구: 가능하면 한옥이 우리 건축의 지평을 넓혀주고, 우리 주변의 삶 속에 깊이 들어오기를 희망한다. 건축가 개인으로는 이제까지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공간과 구조를 지닌 한옥을 만들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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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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