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혁신도시서 제외시켜 달라"

전국 10곳 혁신도시사업 주민 반발로 표류
 ◇전남 나주시 금천면 동악리의 한 조립식 건물에 마련된 광주·전남 공동 혁신도시 지역민 보상대책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한 지역민이 낙담한 채 앉아 있다. 광주=박진주 기자
국가 균형 발전을 취지로 전국 10곳에 추진되고 있는 혁신도시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양도소득세 문제. 공공 목적을 위해 수용되는 부지에 한해 기준시가로 양도소득세를 매기도록 규정된 조세특례제한법의 일부 조항이 지난해 말로 소멸하면서 올해부터 보상금의 실거래가로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보상금 책정도 핵심 현안 중 하나. 일부는 혁신도시 내와 인근 땅값의 차가 최대 10배 이상 벌어졌다. 주민들은 이 두 가지 이유로 “삶의 터전은 물론 돈까지 빼앗아 간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로 인해 경남 진주와 울산 등 일부 혁신도시에서는 부지에서 제외해 달라는 주민들의 요구도 빗발치고 있다.

여기에다 ‘보상금 협의’를 놓고 지역주민들 간 다툼까지 벌어져 혁신도시 건설을 더욱 지지부진하게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유지와 시유지 등으로 구성된 부산과 제주를 제외한 8개 혁신도시가 보상의 기본과정인 토지 및 지장물 조사를 못하고 있다. 당초 계획인 6월 보상 완료, 9월 착공은 사실상 힘들 것으로 보인다.

◆‘세금 줄여 주세요’=“에 엥∼∼∼. 마을 주민들은 속히 노인정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17일 오전 충북 혁신도시에 편입되는 음성군 맹동면 두성1리 노인정 앞에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5분도 안 돼 마을주민 30∼40명이 모였다. 이 마을에서 민방위훈련을 방불케 하는 비상소집은 하루 평균 3∼4차례. 보상가액을 정하기 위해 지장물 조사를 나온 대한주택공사 관계자들의 업무를 방해하기 위해서다. 한 주민은 “정부가 나라 발전을 위해 강제로 우리 땅을 수용하는 것까지는 이해한다”면서 “그러나 삶의 터전을 잃는 대가로 받은 보상비에서 실거래가로 양도소득세를 매기는 것은 농민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항변했다.

전국혁신도시 대책본부 임윤빈 공동위원장은 “똑같은 국책사업으로 10개월 전에 보상이 이뤄진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는 기준시가로 양도소득세를 부과했는데 혁신도시는 실거래가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전국의 혁신도시 건설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대책본부 측은 보상을 받을 주민 30∼40%가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임 위원장은 과세기준에 따라 양도소득세를 내는 편차가 ‘하늘과 땅’이라고 설명했다. 맹동면을 기준으로 보상비를 4억5000만원 받으면 양도소득세가 1억원가량 된다. 그러나 8년 이상 농사를 지은 농민에게 최대 1억원까지 양도세를 공제해 주는 농업인 양도소득공제로 내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10억원의 보상비를 받을 경우 기준시가를 적용하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지만 실거래가로 하면 2억5000만원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로 보상협의회조차 구성하지 못하다 지난 17일 첫 회의를 한 강원혁신도시 후보지인 원주시 반곡동 인근. ‘도심의 빈민으로 만드는 혁신도시’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곳곳에 나붙어 있었다. 주민보상대책위 심은보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뒤부터 보상의 잣대가 되는 거래실적이 거의 없어 땅이 저평가될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의 반발이 일자 열린우리당 김종률 의원(진천·음성·괴산)은 지난 4월 전국 10개 혁신도시 사업지구 내 토지의 양도소득세 감면 등을 골자로 한 ‘조세특례 제한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안은 현재 상임위에 계류 중이며 6월 본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경부 등 관련 부서는 타 공공사업에 대한 형평성 문제로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처리 여부가 불투명한 실정이다.

◆“보상 좀 많이 해주세요”=지난 20일 전남 나주시 산포면사무소 앞. 2005년 말 광주·전남혁신도시 후보지로 결정됐을 때에는 “혁신도시 선정을 축하합니다”라는 환영의 플래카드가 수십 개 붙었던 곳이다. 그러나 현재 이곳은 “현 시가로 보상하라”, “주민생계대책 마련하라” 등의 혁신도시 반대문구로 바뀌어 있었다.

혁신도시가 들어설 산포면과 금천면 일대 부동산 가격은 밭 20만원선, 논 15만원선, 임야 12만원선으로 책정돼 있다. 그러나 봉황면 등 인근 지역은 이보다 15만∼20만원 이상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배 농사를 짓는 최동구씨는 “올해부터 영농손실액을 3년에서 2년으로 줄이고 보상액도 각 도별로 나눠 주다 보니 전남지역은 1평당 3700원에 불과하다”면서 “매년 5000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던 배농사를 못하게 돼 대책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의 경우 혁신도시 내와 인근지역의 땅값이 최대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혁신도시 내에는 보통 30만∼90만원 하지만 길 하나 차이로 평당 500만원을 호가한다는 게 주민들 주장이다. 유경희 주민대책위원장은 “그동안 그린벨트로 묶여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했는데 이젠 헐값에 땅까지 빼앗기고 쫓겨나게 생겼다”면서 “마을 전체가 초상집”이라고 전했다.

◆“혁신도시에서 제외시켜 주세요”=주공 직원들은 한 달째 경남 진주혁신도시 지구인 금산면 속사리(20만여평) 출입을 못하고 있다. 혁신도시에서 배제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직원들의 출입을 봉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애초 혁신도시 내에 포함되지 않았던 이곳을 진주시가 2011년 전국체전에 대비해 공설운동장을 짓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 정금화 주민대표는 “1000여명의 주민들이 비닐하우스에서 풋고추를 재배, 매년 100억원의 소득을 올리는 농토는 모두 수용되고 집만 남는데 누가 혁신도시로 받아들이겠느냐”고 항변했다. 울산혁신도시가 들어설 중구 원유곡동 주민들도 ‘생계대책’을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2004년 11월 자연녹지에서 일반주거지역(1종)으로 풀린 2만4000여평의 지역 주민들은 혁신도시 계획 때부터 거주민의 95%가 반대한다는 설문조사를 근거로 제외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건교부가 이 지역을 추가로 편입시키면서 문제가 촉발됐다.

◆주민 간 이견 및 무리한 요구=경남 진주혁신도시에는 주민보상대책위만 무려 5개가 난립해 있다. 문산읍과 금산면에 각 2곳, 가호동에 하나다. 대책위별로 보상에 대한 입장 차이가 큰 데다 한목소리를 만들어내지 못해 혁신도시사업을 더욱 지지부진하게 하고 있다. 진주시청 관계자는 “위원회가 5곳이나 된 데다 요구하는 것도 모두 달라 이들을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울산혁신도시도 주민대책위가 3개나 된다. 장현·약사동, 태화·우정동, 원유곡동이 자체적으로 구성했다. 지난 17일 장현·약사동 대책위가 자체 총회를 했고 태화·우정동은 오는 25일 첫 모임을 갖는다. 이들이 분리된 것은 위원장 선출문제 때문으로 알려졌다.

전북 전주·완주혁신도시 주민들은 보상 예정가를 먼저 제시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토지공사 관계자는 “토지와 지장물 조사를 하고 이를 감정평가 후 공람공고를 거쳐 보상가를 제시해야 하지만 주민들이 억지를 부리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면서 “이는 보상협의 때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속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박진주 기자, 전국종합 pearl@segye.com

 

혁신도시=전국 10곳에 들어서는 혁신도시는 공공기관 및 산·학·연이 서로 긴밀히 협력할 수 있는 최적의 혁신여건과 수준 높은 주거·교육·문화 등 정주(定住)환경을 갖춘 새로운 차원의 미래형 도시를 뜻한다. 혁신도시는 노무현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수도권 과밀화와 국토 불균형 발전에 따른 경쟁력 약화를 극복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내용의 골자는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124개를 2012년까지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으로, 지난 2월12일 혁신도시특별법이 제정돼 현재 추진 중이다. 건교부는 6월부터 보상에 착수해 8월 실시계획 승인을 거쳐 9월부터 순차적으로 착공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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