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926-아침 햇살에 빛나는 건너방 침실
한옥에 산다 하면, 사람들은 전통고가구나 한복 혹은 한식 등을 같이 떠올리는 것 같다. 옥인동에 작은 한옥을 고치고, 방송에 나가게 된 적이 있는데, 이 때 사회를 보셨던 건축가께서 집을 둘러보시고 처음 한 말씀이 '이 집은 아직 가구나 인테리어는 집에 맞추지 않은 것 같군요.' 였던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은 한옥과 구색을 갖추어 더 많은 것들을 바라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한옥에서 이제 만 3년을 지나고, 겨울을 세번, 봄을 네번째 맞이한 경험으로는, 그렇게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한옥은 충분히 좋은 집이고, 사랑스러운 공간이란 점이다. 그런 까닭인가 우리집엔 전통 고가구가 없다. 대부분의 가구는 신혼때 장만한 가구들이고, 오래된 것이 있다면, 우리 아버지가 내 국민학교 시절에 전파사를 하실 때, 어찌어찌 생겨난 진공관 전축과, 그것과 상관없이 전축 캐이스라 불리는 목재장이 있을 뿐이다.
아파트나 다세대와 마찬가지로 한옥도 주거로서 우리의 평범한 삶을 담고 있다. 지나치게 특별한 대접을 하는 것은 좀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한옥에 살면, 느끼게 되고, 알게 되는 여러 일들이 있다. 아파트나 다세대에 살면 모르던 여러가지 것들을 말하고 싶다. 이런 저런 것들중에, 오늘은 '빛나는 창들' 이야기를 해보자.
051012-가을 햇살 가득한 대청의 모습 우리집 주변으로는 한옥만 아니라, 근생(근린생활시설이 들어가는 건물)이나 다세대주택도 있고, 조금 거리를 두고는 15층이나 되는 대형 빌딩이나, 최근에 신축한 10층짜리 중규모의 사무소 임대건물 등이 있다. 따라서 겨울이 되면 해가 낮아지고, 아무래도 주변 건물에 걸려, 해가 뜨려면 10시나 11시가 되야 길게 누운 햇볕이 마당을 가로질러, 대청 유리창을 지나, 대청 안쪽을 비추게 된다. 빛으로 가득한 공간이 몇 분 사이에 되는데, 이 빛은 여기저기를 부딪치며, 대청과 안방 사이에 있는 사분합문도 밝게 비추게 된다.
060312-밝게 빛나는 안방 4짝문 아는 분은 잘 아시겠지만, 우리의 창과 문들은 창살이 밖으로, 창호지가 안으로 붙는다. 보통, 안방에서 보면, 그저 허연 창호지문이지만, 빛이 가득한 대청이 되고 나면, 그 빛이 비쳐 4짝문은 신비한 문양을 띄우며 '빛나는 창'이 된다. 봄이 되고, 초여름에 접어드는 요즘, 이른 아침부터 드는 햇살과 '빛나는 창들'은 안방 4짝만이 아니라, 침실로 쓰는 건너방, 그리고 안방 주인창으로 눈부신 빛과 살그림자를 만들며, 우리 가족의 아침을 맞이해 준다.
아파트에 살 때도, 이보다 더 좋은 햇살을 받고 아침을 맞이했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 기억이 나지 않을까 싶은데, 아마도 그것은 집과 내가 별로 나눈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060312-마당에서 본 건너방을 비추는 햇살 소리내어 말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집이나 거기에 사는 사람은 서로 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집일 수록 여러 이야기가 있고, 부지런하고 안목있는 사람일수록 집에 해줄 일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한옥은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야기가 많은 집이다. 격앙된 표정으로 어려운 이야기를 말하듯, 부자연스러운 형태와 공간으로 말하려는 현대 건축과 다르게, 한옥은 조용히 가진 것을 내어 놓는다. 마당이 있고, 그것을 맞이하는 대청과 방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여유로운 창과 문살들이 이런 조용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주인공들라 하겠다.
060515-햇살이 드는 창과 까맣게 자고 있는 식구들 처음와서 맞이한 아침의 풍경이나, 둘째가 태어나 얼마지나지 않은 날에, 그리고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에도, 햇살가득한 대청과 빛나는 창들이 있었음을, 글을 쓰면서 알게 된다. 어쩌면 한옥이 우리 가족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우리와 삶을 같이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원래 집이란 우리들과 삶을 같이 하는게 아니었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