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won7938200701301856170.jpg그 골목길에 우린 무엇을 두고 왔나

구불구불한 골목길, 좁고 가파른 시멘트 계단, 칠 벗겨진 낡은 담장과 철제 문, 바람에 휘날리는 골목길 빨래…. 대도시 서울에는 최신의 고층 아파트만 있는 게 아니다.

가파른 비탈길을 가운데 놓고 낡고 허름한 주택이 줄지어 선 30~40년 전 모습의 마을이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그런 곳도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 재개발 등 각종 도시 사업이 곳곳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일단 개발 사업이 이뤄지면 기존 생활 공간과 주민의 생활 방식에는 근본적 변화가 불가피하다.

국립민속박물관이 도시 서민의 삶과 그들의 생활 공간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한 것은 그래서다. 뉴타운 사업이 추진중인 서울 마포구 아현2동 일대가 대상지다. 행정중심복합도시가 건설되는 충남 연기군 금남면 반곡리와 인근 마을 등 농촌의 민속을 조사한 적은 있지만, 도시민의 삶을 조사하는 것은 처음이다.

조사 내용은 다양하다. 주민들은 어디에서 이 마을로 들어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가정은 어떻게 꾸리는지, 나아가 골목에서 마주보는 이웃과는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세시 풍속과 종교 생활은 어떤 식으로 하는지 등 도시 서민의 일상에 대한 총체적 그림을 그리자는 것이다.

조사는 설 직전에 시작한다. 설날 고향으로 떠나는 주민의 모습과, 서울에 남은 사람들의 명절 나기 광경을 살피기 위해서다. 이렇게 추석 연휴까지 조사를 진행한 뒤 연말께 보고서를 낸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저녁이 돼야 귀가하는 도시인의 생활 패턴에 따라, 민속박물관 조사 요원은 현지에 방을 빌려 상주하면서 조사를 벌인다.

인근 공덕2동, 염리동, 대흥동 일부와 함께 ‘아현 뉴타운 지역’으로 지정돼 있는 아현 2동은 재개발 조합 설립 인가가 나는 등 이미 뉴타운 건설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조사를 위해 최근 현지를 답사한 민속박물관의 관계자는 “골목길이 많고, 한 집에 10여 세대가 사는가 하면, 생활 공간을 넓히기 위해 집의 2, 3층을 골목으로 툭 내미는 등 아파트 촌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며 “20세기 후반과 21세기가 겹쳐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천진기 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은 “지금까지 이뤄진 재개발 사업은 대부분 마을의 원래 모습을 파괴하면서 진행됐다”며 “아현2동 일대의 재개발 사업은 골목길과 기존 주택 서너 채를 생활 박물관의 개념으로 영구 보존, 그 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후대에 보여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속박물관은 아현2동 외에 서울 시내의 다른 재개발 지역, 중소 도시 주민을 대상으로 한 도시 지역 민속에 대한 조사를 5개년 계획으로 실시할 방침이다.

한편 민속박물관에 앞서 문화예술인 단체인 문화우리는 지난해 아현2동 일대의 경관을 사진으로 촬영해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민속박물관의 관계자는 “문화우리가 마을의 겉 모습을 기록했다면 민속박물관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주민의 삶을 살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2007 01 30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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