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구의 서울 진(眞)풍경 ⑪ 금천교 시장과 체부동 골목
경복궁역 나와서 구불구불 … 간장떡볶이 맛난 그 시장

금천교 시장 초입 모습. 정면에 보이는 철물점과 정육점은 오래 전부터 이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사진 구가도시건축]
시장은 불야성이다. 허름한 예전 모습은 오간 데 없고, 가게마다 활기가 넘친다. 길로 쏟아져 나온 간판과 테이블. 쫄쫄이 등산복의 배불뚝 아저씨부터 미니스커트의 생머리 아가씨까지…. 아쉽게 사라진 종로1가 피맛골이 이곳 서촌 금천교시장에서 부활한 것만 같다.
8일 금요일 밤, 술 한 잔이 생각나 시장에 들렀다. 우리가 간 ‘전대감댁’은 앞에 있는 건물 1층 반쪽을 터 통로를 내고, 안에 있는 한옥을 고쳐 장사를 하고 있었다. 손님이 몰려 한옥엔 아예 들어가지 못하고, 길목 테이블에 앉으니 마당 복판 평상에 앉은 사람들이 부럽기만 하다. 평상의 손님들은 옆구리가 닿을 정도로 좁게 앉아도 모두 흐뭇한 표정이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조금 위쪽에 동서로 길게 뻗은 금천교 시장. 약 300m 길이로 활처럼 휘어진 모양이다. 길 양쪽으로 가게들이 늘어서고, 그 사이로 얕고 깊은 골목이 드문드문 이어져 있다. 동쪽 입구에선 복잡한 시장도 서쪽으로 가면 인왕산을 향해 시원하게 트여 기분이 좋다. 오래 전부터 있었던 시장 같지만, 금천교시장의 원래 위치는 지금의 사직로 한가운데였다. 구불구불한 골목이 얽히고설킨 속에, 내수·내자·사직·적선·체부·필운·누상·누하동을 아우르는 커다란 시장이었다.
당시 시장 옆에는 그 유명한 ‘내자호텔’이 있었다. 1935년 지은 미쿠니(三國) 아파트를 해방 후, 주한미군이 숙소로 사용한 것으로 국내 최초의 아파트로 알려져 있다. 1967년 사직터널이 뚫리고 길을 내면서 시장과 호텔 어느 쪽을 지날 것인가 하는 논의가 있었다. 원래의 안대로 시장 쪽을 지나게 되지만, 내자호텔 역시 사직터널이 2개에서 3개로 늘어나면서 도로확장과 함께 결국 90년대에 사라지고 만다.
“2000원어치 주세요.”
심벌즈 같이 생긴 철판에 국물 없이 뭉쳐진 떡볶이를 이리저리 젓고 있는 할머니에게 주문을 한다. 저 위쪽 통인시장엔 여기저기 원조가 많지만, 금천교시장에는 철물가게 앞 ‘기름 떡볶이 할머니’ 한 분 뿐이다. 주문을 받고서야 불을 댕긴다. 고춧가루를 조금 뿌리고, 뚝배기에서 뜬 간장양념을 얹고는, 숟가락으로 떡들을 철판에 이리저리 굴린다. 가래떡 등판에 노릇노릇 양념이 눌어붙을 즈음, 이쑤시개로 집어 주며 맛을 보란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떡살이 씹히고 고소하고 짭짤한 맛이 입안에 감돌았다.
시장에는 과일·쌀·정육·참기름·옷·신발·철물 등 ‘동네가게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조금씩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인사동·북촌에 이어 서촌에도 관심이 몰리고 인왕산 등산객이 늘어나면서 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3년 전과 비교하면 89개 가게 중 33개가 바뀌고, 그 중 반 넘는 가게들이 늦게까지 장사를 하는 식당과 술집이다. 동네 밖 외지인을 상대하는 가게들이 많다.
새벽 2시, 시장의 불빛이 잦아들고, 몇몇 가게가 하루 정리를 하고 있다. 꺾어지는 골목을 따라 들어간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골목이라는 체부동 골목이다. 얼마 전 보름을 지난 골목은 달빛을 받아 그리 어둡지 않았다. 미로처럼 펼쳐진 골목은 가다 꺾고, 가다 꺾고 하기를 반복하며 좁아지다가 넓어지고, 담장과 물건에 치이다가 별안간 시원해지곤 했다.
마치 오래된 시간이 나를 이끌고 있는 듯하다. 수백 년 전 그 누구도 이 골목을 따라 나처럼 다녔을 것이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 집 창으로 하얀 형광등 불빛과 함께 가족들의 도란도란 소리가 새어 나온다. 붉은 벽돌로 된 한옥 담장을 따라가면 90년도 넘었다는 체부동 성결교회와 얼마 전 게스트 하우스가 된 유성여관이 나타난다. 다시 골목 저 끝으로 아직 꺼지지 않은 시장의 불빛이 보였다. 시장은 오늘도 강물처럼 시간과 사람을 흘려 보내고, 골목에는 스며든 시간이 또 한번 곱게 쌓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