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조정구의 서울 진(眞)풍경 ⑨ 이태원 도깨비시장길
두 개의 종교 품은 언덕 … 한국인이 이방인 같은 동네

서울 이태원 도깨비시장 뒤 급한 경사지에서 바라본 이슬람 성원의 모습. 가운데 저 멀리 돔 지붕과 두개의 첨탑이 보인다. 왼쪽으로 시장을 따라 줄지어 있는 건물의 뒷모습이 성벽처럼 보이고, 그 아래로 집들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다. 파노라마 기능으로 여러 장을 찍어 한데 이었다. [사진 구가도시건축]
서울 이태원에서 올라온 길은 능선을 타고 한강을 향해 길게 뻗는다. 2, 3층 높이의 건물이 양쪽에 늘어서고, 작은 가게들이 나른한 모습으로 그 안에 들어있다. 길가로 자동차와 오토바이, 가게의 화분과 의자, 또 냉장고에 작업대마저 나와 있지만, 이 모든 것은 5월의 밝은 하늘아래 그저 한가하기만 하다.
도깨비시장길은 이슬람 서울중앙성원에서 시작해 한광교회에 이르는 길이 600m의 능선길을 말한다. 남북으로 놓인 능선을 경계로 서쪽으로 나지막이 이어지는 곳이 보광동, 동쪽으로 꺼지듯 가라앉은 곳이 한남동이다. 언덕을 가득 메우며 빼곡히 들어선 집과 그 위에 올라선 꼭대기 교회 풍경은 한강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에게 ‘친숙한 서울의 초상’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예배공간은 남자와 여자가 달라요. 그건 차별 하는 게 아니라 구별하는 거예요.”
아프가니스탄 유학생 나페씨의 유창한 한국말 설명에 이슬람사원에 견학 온 부모와 아이들이 귀를 쫑긋하고 듣는다. 사원 내부는 단순했다. 네모난 공간에 네 개의 기둥, 가운데 빛이 쏟아지는 둥근 돔에, 눈에 띄는 가구는 의자 한 개와 경전을 보는 낮은 책상, 그리고 ‘민바르’라는 계단 위에 작은 나무아치를 얹은 설교대가 다였다. 넓게 깔린 카펫바닥에 신도들이 들어와 자유로이 자리를 잡는다. 30명쯤 되는 사람들이 구석에 모여 토론을 하는가 하면, 한 쪽에는 아빠를 따라 온 네 살, 여섯 살 정도의 어린 두 형제가 무릎을 끓고 열심히 아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작은 그 모습들이 귀엽고 대견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이슬람성원이 된 서울중앙성원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1969년 약 5000㎡(약 1500여 평)의 땅을 정부로부터 받아,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이슬람 국가의 지원으로 76년 5월 21일 개원했다. 현재 전국에 첨탑과 예배소가 같이 있는 이슬람 성원은 11개로 이슬람신자는 3만5000명에 이른다.
성원 앞으로 내려와 카페 ‘오늘은 열었을 거야’가 문을 열었는지 보고, 길을 따라 간다. 산책 나온 가족을 만난다. 오빠는 네 발 자전거를 타고, 어린 여동생이 탄 유모차를 히잡을 두른 엄마가 밀고 있다. 그리고 뒤에선 레게 머리를 딴 아프리카 여인 셋이 우리 가족을 오히려 신기한 듯 훑어보고 특유의 걸음거리로 건들거리며 지나간다. 이 곳 도깨비시장길에선 우리가 이방인 같다.
일제강점기 이 근처는 모두 묘지였다. 전쟁을 지나 60년대에 들어 가난한 사람들이나 상경한 지방민이 판자집을 짓고 자리잡기 시작했다. 무허가라 해도 서울에 이만한 장소를 찾기 어려웠다. 집을 지을 때, 해골이 나오곤 해서 사람들 중에는 자면서 ‘내 머리 내놔’라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한다. 능선을 따라 들어선 판자집은 근처 군부대나 내국인들의 유흥주점들로 채워져 ‘술집 텍사스’라 불리기도 했다.
70년대 초, 판자집들은 주택양성화사업으로 지금의 2, 3층 건물들로 바뀌었다. 건물을 제대로 지으면 무허가로 점유한 땅을 살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건물이 바뀌자 안팎으로 가게들이 들어섰다. 이슬람성원에서 지금의 도깨비시장 아래까지 시장이 자리잡았다. 80년대 전성기에는 위에서 보면 사람들의 까만 머리만 가득 보일 정도로 붐볐다고 한다. (2010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이태원 공간과 삶)
도깨비시장이란 이름은 단속을 나오면 귀신같이 사라지기 때문이란 설도 있지만, 수십 년간 장사를 한 상인들의 말로는 오후 3시에서 6시까지 세 시간 동안 사람들이 모였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생긴 것이라 한다. 사실, 이렇게 꼭대기 능선에 시장이 있기는 매우 어렵다. 내가 본 것은 북아현동 산동네에 있던 능선길 정도였다. 아래가 너무 멀고, 주위에 사람이 많이 살아 위로 올라오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길에서는 2, 3층의 건물로 보이지만, 사실 옆에 있는 골목을 따라 내려가서 보이는 그 등 뒤의 모습은 4, 5층의 높다란 건물이다. 얌전한 줄 알았더니, 그 속의 기백이 남다른 사람을 만나는 듯하다. 어떻게 이렇게 급한 경사에 축대를 쌓고 건물을 짓고 그 속을 이어 층을 연결하고 했을까, 까마득한 노력들이 떠오르면서 이 건축물이 저절로 존경스러워진다.
도깨비시장길의 끝머리, 한광교회 앞마당에서 건물들 사이로 들어간다. 차들이 가득한 주차장을 지나 담장 너머로 한강이 펼쳐진다. 흘러가는 강 한가운데로 마치 장난감 모형처럼 한남대교가 보인다. 우리 회사 일본인 직원인 사짱이 그랬던가. 한강대교에서 바라 본 저 교회아래 골목이 보고 싶어 서울에 왔다고, 그녀는 지금 5년째 서울의 골목을 누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