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끼고 있어 늦여름에도 여전히 붐비는 여행지다. 노고단·피아골·반야봉이 가까운 구례는 지리산 종주의 관문이며, 섬진강 래프팅을 위해서도 찾는 사람이 많다. 구례에는 수많은 숙박시설이 들어 서 있지만, 올해는 이색 잠자리에서 색다른 추억을 만들어 보자. 지리산 자락의 쌍산재와 곡전재는 한옥을 개조한 운치있는 ‘고택(古宅) 펜션’이다. 화엄사 뒤편의 구층암에서도 계곡물 소리를 벗 삼아 멋진 여름밤을 보낼 수 있다.
# 정갈하고 그윽한 멋이 담긴 쌍산재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상사마을의 쌍산재(雙山齎)는 정갈하고 기품 있는 고택이다. 외부에서 보면 대문 앞의 ‘당돌샘’이라는 약수를 빼고는 평범한 한옥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감탄사의 빈도가 늘어나게 된다. 집 규모로만 보면 결코 대갓집은 아니지만, 5000평쯤 되는 집터 곳곳에 그윽한 멋이 숨겨져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앞마당 주변에 안채와 건너채, 별채 등의 건물이 들어 서 있다. 별채 옆 대나무 숲을 따라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면 서서히 쌍산재의 진면목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낮은 구릉을 따라 만들어진 돌계단은 너무도 정겹고 아름답다.
돌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넓은 잔디밭이 펼쳐지고, 다시 길은 가정문(嘉貞門)이라는 현판이 달린 중문으로 이어진다. 가정문을 통과하면 드디어 쌍산재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서당채가 나온다. 서당채 바로 앞에는 시야를 가릴 정도로 두충나무, 은행나무, 동백나무, 매화나무가 우거져 있다. 이들 숲은 번잡한 세상의 시름을 잊게 하는 차단벽이 된다.
수십년 전까지 서당으로 사용한 서당채의 널찍한 대청마루와 툇마루는 지금도 반질반질 윤이 난다. 마침 목침이 눈에 들어온다. 목침을 베고 서당채의 서늘한 마루에 누워 낮잠을 청한다고 생각하자, 절로 가벼운 흥분까지 느껴진다. 쌍산재의 매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서당채 왼편의 오솔길을 지나면 영벽문(映碧門)이 나타나고, 이 문을 열면 작은 저수지가 나타난다. 저수지 주변에는 멋진 산책길이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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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층암 요사채의 원목 기둥.(위)◇쌍산재의 안채. |
쌍산재는 집주인 오경영(43)씨의 6대조 할아버지가 200년 전에 지은 한옥으로, 오씨가 2004년 깔끔하게 재단장해 숙박객을 받기 시작했다. 방마다 주방과 비데를 갖춘 화장실을 따로 마련했지만, 집의 뼈대는 원형 그대로 살려 놓았다. 오씨는 형광등 갓으로 대나무를 사용할 정도로 세심하게 집을 꾸몄다. 서당채 주변에는 간이 수영장, 바비큐장, 공놀이가 가능한 잔디밭, 체험 텃밭까지 갖춰져 있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금환락지, 곡전재
토지면 오미리의 곡전재는 이른바 ‘금환락지’(金環洛地)라는 명당에 약 100년 전 지어진 한옥. 풍수지리 이론에 따르면 이곳은 천상의 옥녀가 떨어뜨린 금가락지 형상(금환락지)으로,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한옥 5채가 호박돌로 쌓은 2.5m 높이의 돌담에 에워싸여 있고, 뒷마당에는 대나무숲이 울창하다. 잉어가 뛰어노는 작은 연못과 그 옆 누각이 곡전재의 가장 큰 볼거리. 마당 한가운데로 연못물을 이용한 도랑이 흐른다.
전체적으로는 중장년 세대가 어릴적 찾았던 시골 외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방마다 수세식 화장실과 주방을 들여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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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전재의 침실. (왼쪽)◇구층암 앞마당. |
#멋진 암자에서의 하룻밤, 구층암
구층암은 화엄사 바로 뒤의 고즈넉하고 소담스러운 암자. 마당에 들어서면 순식간에 너무도 포근하고 아늑한 분위기에 마음을 뺏기게 된다.
한평 남짓한 방의 희미한 백열전등, 멀찌감치 떨어진 재래식 화장실, 지하수를 바가지로 끼얹어야 하는 간이 목욕장 등이 도시인에게는 불편할지 모른다. 그러나 구층암에서의 하룻밤은 낭만 그 자체다. 밤이 되면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다. 희미한 달빛에 겨우 절집의 윤곽과 지리산 능선을 가늠할 수 있다. 싱그러운 나무 냄새와 풀벌레 소리, 화엄사의 은은한 종소리는 안면(安眠)을 보장한다. 새벽에는 새소리와 화엄계곡 물소리에 잠을 깬다.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게 된다.
구층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옆 화엄계곡으로 이어지는 산책로. 새벽에 울창한 대나무숲이 터널을 이룬 이 산책로를 걸어보면, 틀림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자랑을 하게 될 것이다. 다듬지 않은 원목을 그대로 사용한 절집 기둥도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게 한다. 물론 구층암에서 무시로 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지 스님의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후덕한 주지 스님은 인심이 넉넉하다
≫여행정보
서울에서 승용차로 구례를 가려면 대전에서 대진고속도로(대전∼진주)를 타고 가다 함양나들목에서 88고속도로로 갈아탄다. 남원나들목으로 나와 19번 국도로 들어서면 된다. 4시간 정도 걸린다. 쌍산재, 곡전재, 구층암은 모두 화엄사 주변에 있다. 쌍산재(www.ssangsanje.com/011-635-7115)는 화엄사로 올라가다 마산파출소에서 좌회전해 1.6㎞를 간다. 곡전재(www.gokjeonjae.com/019-625-8444)는 화엄사 입구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토지면으로 2㎞ 정도 가야 한다. 구층암(061-783-1177)은 화엄사 주차장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요즘 쌍산재는 1박에 6만∼15만원. 곡전재는 1박에 10만∼12만원.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061)780-23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