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가 짙게 낀 22일 오전 서울 중구 동대문운동장 내 풍물 벼룩시장. 상인들이 둥근 운동장 구조를 따라 촘촘히 자리잡은 노점상에서 천막을 거둬내며 개장 준비를 하느라고 분주했다. 그러나 이틀 전 바로 옆 동대문야구장이 11월부터 철거된다는 서울시의 발표를 접해서인지 이들의 얼굴에서 미소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곳에서는 옛 청계천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볼 수 있었던 1960∼70년대 추억의 물건들이 유통되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전축이나 LP판, 각종 민속품, 골동품 등 평소 쉽게 접하기 힘든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어 외국인 관광객들도 자주 찾아오고 있다.

동대문 풍물시장에는 현재 894개 노점상이 들어서 있다. 청계천 주변에서 영업했던 이들은 청계천 복원으로 2003년 11월 이곳으로 강제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이 서울을 세계적인 패션도시로 만들기 위해 동대문운동장을 헐고 ‘동대문 디자인 월드플라자’를 비롯해 공원화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이곳 상인들의 운명은 또 한 차례 요동 치게 됐다. 이곳 상인 1000여명은 대부분 풍물시장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인 신덕선(62)씨는 “이명박 전 시장이 노점상들을 이곳으로 이주시키면서 생존권과 함께 풍물시장 홍보까지 약속했다”며 “3년이 넘도록 상인들과 대화 한 번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철거를 결정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풍물시장 특별대책위원회 한기석 위원장은 “서울시가 풍물시장 상인들과의 협의를 통해 동대문운동장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깨고 일방적으로 공원화 계획을 발표했다”면서 “생존권을 보장할 적절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풍물시장을 끝까지 사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동대문운동장은 노점상들에게 일시적으로 빌려준 것”이라며 “다른 지역 노점상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한 대안을 마련한 뒤 협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지난해 11월 현지조사를 벌인 뒤 “동대문운동장은 역사·문화적 가치가 있어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동대문운동장은 1926년 경성운동장이란 이름으로 지어진 국내 최초의 근대 체육시설로, 광복 전후와 근대화 과정에서 각종 시민·정치 집회가 열리는 등 한국 근현대사의 자취가 고스란히 스며 있는 곳이다.

서울시는 내년 4월쯤 동대문운동장 철거에 들어가 2010년까지 연면적 3만9670㎡ 규모의 디자인 월드플라자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2007, 3, 23, 세계일보
신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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