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시는 현재 인천경제자유구역(IFEZ) 개발과 원 도심 재개발 사업 덕에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30년이면 인천시가 부산시를 제치고 한국의 두 번째 도시가 될 것이라 예상되는 가운데, 이러한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느린 속도로 변화하는 곳이 있다. 바로 ‘차이나타운’으로 유명한 인천 중구 해안동 일대다. 이곳은 근대 개항 시기 건물과 대형 창고들로 독특한 지역색을 드러낸다. 인천시는 이 지역을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해 지역성을 활용하는 한편 ‘문화 공간’인 미술창작센터(인천아트플랫폼)를 조성했다. 10월로 예정된 인천아트플랫폼 공식 개관을 앞두고, 이번 사업을 총괄 계획한 황순우와 인터뷰를 가졌다.
이 지역을 주목한 이유는? 현재 인천을 두고 ‘중심 없는 도시’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이곳저곳에서 개발이 한창이다. 그러나 인천에서 지역의 정체성을 지닌 곳을 묻는다면 나는 바로 이 곳을 꼽을 것이다. 이곳 중구 일대는 최초로 근대적인 도시계획을 도입해 시행한 곳으로 1800년대 말에 외국인 거주 지역 설치와 함께 계획된 가구 및 획지, 도로의 원형이 보전되어 있다. 그러나 그 흔적들과 함께 지역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왜 미술창작센터인가?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도시 재생’이다. 10년 전에 대다수 지역민이 바라듯 이 지역을 아파트 단지로 개발했다면 이곳에 잠재된 역량 모두를 잃었을 것이다. 이곳이 지닌 정체성을 보존하면서 지역 활성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는 모습을 고민했다. 기존 건물을 이용한 문화시설을 매개로 도시가 살아나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시가 받아들여 2000년에 지구단위 계획에 대한 용역을 진행했다. 지구단위 계획에서 몇 가지 역점을 둔 부분이 있다. 첫째는 점점 사라지는 지역 건축물을 발굴해 문화재로 등록하는 일, 문화재는 아니지만 이 지역이 지닌 문화적인 경관, 예를 들면 옛 건물 형태나 역사적인 공간 등을 복구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지정하는 주변 지역 정비계획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둘째는 주변 지역 활성화를 위해 차이나타운 활성화와 과거 인천시청이었던 중구청 앞 문화재 건물들을 가로박물관으로 활용하는 방법 등을 고민했다. 마지막은 문화 공간 조성을 통한 지역 활성화였다. 이러한 고민은 인천아트플랫폼의 대지인 두 블록을 묶어 점점 사라지는 창고들을 이용하자는 결론에 이르게 했다. 이후 창고를 어떤 용도로 활용할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고, 각 분야별 검토 끝에 미술 문화 공간으로 방향을 잡았다. 우리는 일시적인 행사 위주가 아니라 순환되는 구조 속에 기존 지역 주민과 새로운 주민들이 함께 향유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했다. 전문가들과 논의를 거쳐 창작 아틀리에를 중심으로 전시, 유통, 교육, 지역 작가 지원 등에 대한 프로그램을 갖춘 공간으로 계획했다.
쇠락한 지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많은 지자체에서 가로 정비 사업 등 비슷한 사업들을 진행했다. 성공 사례가 요원한 가운데 예술 분야와 접목한 사업이 경쟁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처음 의도와 달리 잘 운영되지 않는 공간이 많다.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나?
사람의 얼굴과 성격이 다르듯 도시나 지역도 각기 다른 모습이다. 쇠락한 곳일수록 그 모습이 더 확연하다. 그런데도 가로 정비를 하면서 본 모습을 잃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도시의 모습만 재현되곤 한다. 건물의 모양이나 획일화된 가로 시설물, 간판, 요란한 바닥 포장들과 재래시장을 보면 동네만 다르지 다 똑같다. 이렇듯 창작 작업실을 지역에 대한 고려 없이 지역과 무관한 산속이나 아파트 숲 속에 마련하는 등 작업하는 작가들은 안중에도 없다. 창작 활동을 위해 입주하는 작가들은 그 도시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도시를 느끼면서 창작을 하고 싶을 것이다. 쇠락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인내와 설득이 필요하다. 한순간에 도깨비방망이처럼 휘둘러서 되면 얼마나 좋겠나. 우리도 지역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회복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미술 작업을 매개로 하는 선택을 했다. 아마도 많은 지자체가 창작 공간을 실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싶다.
낙후된 지역을 다시 활성시켰다며 주목받았던 문래예술공단이 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자생적 예술촌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문제인데, 해결책이 있다면? 문래예술공단은 낙후된 공장지대에 예술가들이 들어가 용도를 바꾸며 형성된 곳이다. 그러나 이런 자생적 예술촌은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면 쫓겨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들의 창의적인 노력으로 좋은 공간으로 바뀌었지만,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 좀 더 일찍 도시계획적인 측면에서 고민했어야 한다. 뉴타운 계획이 발표되면 토지 소유주들은 누구나 아파트를 꿈꾼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현상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아파트를 짓는 것보다 창작촌이 부동산 가치가 더 있다고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이곳에서도 주민들이 아파트를 계획해 도시계획적인 조치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시는 주민 협의체를 구성해 주민 참여와 이해를 구했다. 또 도시 재생을 위해 가로 정비와 주차장을 확보하고, 창작실과 비즈니스호텔을 계획했다. 이제 주민들도 지역과 부동산 가치에 대해 확신은 아니더라도 불만은 다소 해소된 것 같다. 최근 인천도 서울과 비슷하게 재개발이 한창이다. 지금 이러한 계획을 세웠더라면 중도에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도시계획적인 측면에서 접근했나? 도시계획적인 측면보다는 역사적 경관과 지역 활성화 방안에서 시작했다. 과거 제물포항 주변은 수도권의 관문 항구로 개항과 함께 각종 외국 문물이 가장 빨리 도입되었으며, 외교, 금융, 무역 등의 활동을 지원하는 각종 건축물과 현지 거주 외국인을 위한 주거, 숙박, 종교, 학교 등의 건물들이 건설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노후하거나 훼손되어 사라져가는 상태다. 지역 내 상당수의 건축물이 1950년 이전에 건축되어 노후화가 심각한 상태고, 소규모 주택이나 점포가 난립해 지역 경제 침체에 따른 부동산 가치 하락과 더불어 슬럼화 징후까지 보이고 있다. 그래서 근대 건축물 주변 지역에 대한 정비 방안으로 근대 건축물 주변 건축물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경관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설정, 도시 계획적 조치의 틀을 마련했다.
어떤 부분에서 건축가가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이 지역은 반드시 보존해야 하는 건물과 그렇지 않은 건물이 섞여 있다. 1900년대 초부터 2000년대까지 건물을 덧붙이고 허무는 과정이 수없이 진행된 결과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건물을 허물고 보존할지 고민해야 했다. 도시는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담은 채 세월에 따라 계속 변화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나는 과거 모습을 그대로 재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변화 과정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보존할 요소들을 선택했다. 도시의 변화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필요한 것이고, 결국 우리도 거기에 새로운 것을 덧댄 것이다. 이것은 박물관이나 문화재로 건물을 복원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여기서 문화재가 아닌 시설의 가치를 판단해 활용하는 부분은 건축가가 아니면 할 수 없다. 또 과거 흔적에서 미래 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이 건축가의 몫이다. 보존을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 복원할 가치가 있는 건물들은 아니기 때문에 안전성을 저해하는 부분은 허물었고, 과거 규모나 형태 등을 유지하며 내부는 완전히 개조했다. 이에 앞서 우리는 각 건물 동의 활용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해 여덟 가지 평가 항목(역사성, 원형 유지 정도, 향후 등록 문화재 지정 가치 여부, 지역의 특성을 나타내는 의장적 특성, 노후 정도, 인접 건물과의 조화, 계획상의 용도 적합성 및 활용 여부)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대한통운 창고는 허물어야 한다는 안전점검 결과가 나왔지만 구조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내부에 철골을 세워 보수했다. 그런 식으로 활용한 건물이 총 네 채다. 역사성은 없지만 활용 가능성이 높게 평가된 다가구 건물은 게스트 룸으로 활용했고, 대흥공사(구 우선주식회사) 건물은 시의 문화재로 등록시켰다. 더불어 고밀화된 전체 부지에서 개입할 공간을 갖기 위해 비워내는 작업을 했다. 총 13동의 건물을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으로 나누고, 건물 간에 연결되는 회랑을 만들어 활력과 쓰임이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운영 방침에 대해 묻고 싶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운영할 계획인가?창작 작업실을 중심으로 한 국제 교류와 협업을 도모하는 창작, 유통, 교육, 전시를 위한 공간이자 작가와 지역 주민이 교류하는 공간이다. 또한 예술을 통한 지역 활성화를 위해 인천의 지역성과 정체성을 부각하는 기획 프로그램 위주의 레지던시로 활용할 것이다. 교류 강화를 위해 공간 지원과 인력 지원을 통해 창작의 결과보다는 과정과 인적 네트워킹을 중요시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한 입주 작가뿐만 아니라 인천아트플랫폼에 관심이 있는 예술가 모두가 교류할 수 있도록 작가 지원실을 운영할 계획이다. 앞으로 지역 작가를 포함한 많은 나라의 작가들이 이곳에 입주할 것이다. 그들의 작품은 모두 디지털 데이터화되어 이곳 전문 자료관에 보관할 예정이며, 작가들은 입주해 사는 동안 오픈 스튜디오 교육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수강생들과도 교류할 것이다. 현재 운영위원회를 중심으로 준비하고 있고, 10월에 개관 후 시범 운영할 예정이다.
문화예술지구가 되면 재산권 행사에 제한이 있어 주민들의 반대가 예상되는데? 그 부분은 구청에서 계획 중이다. 그나마 이곳이 주거 지역이 아닌 다양한 용도를 담을 수 있는 상업 지역이라 다행이다. 지역 정비와 주민들이 원하는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중 하나가 주차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천시에서 부지를 사들여 주차장을 짓고 있다. 이렇게 사업들이 가시화되며 주민들에게 시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10년, 어떤 변화가 예상되나? 인천시는 향후 다른 블록에 대해서도 비슷한 계획을 세우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인위적이고 관 주도적인 계획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부분은 문래동에서처럼 자연적으로 생겨 예술가들과 함께하는 동네가 됐으면 한다. 인천아트플랫폼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다양한 작업실이 즐비하게 늘어서기를 기대한다. 관은 행정 지원을 통해 변화와 성장 속에서도 도시의 맥락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 이미 많은 기성작가가 이 지역 근처에 작업실 겸 소규모 갤러리를 운영하려고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이런 움직임들이 지역이 변화한다는 신호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만 한편으론 인사동이나 다산쯔의 사례에서 보듯, 지역이 과도로 상업화되는 것을 고민하지 않을까 싶다. 이 프로젝트가 완공되기까지 딱 10년이 걸렸다. 개관 후 이곳이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10년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인천아트플랫폼 연표 1999년 지역 보존을 위한 정책 제안 2000년 11월 지구단위 계획을 위한 ‘개항기 근대 건축물 보전 및 주변 지역 정비 방안에 관한 연구’ 용역 시작 2002년 7월 미술 문화 공간 건립 사업 계획 수립 2004년 4월 계획 설계 2006년 7월 기본, 실시 설계 2007년 3월 공사 착공 2008년 10월 사용 승인 2009년 10월 개관 예정
건축가: 황순우 위치: 인천시 중구 해안동 1가 10-1번지 외 33필지 대지면적: 8,450.3m2 건축면적: 4,165.06m2 연면적: 5,605.35m2 건폐율: 62.78% 용적률: 82.01% 규모: 13개동, 지상 4층, 지하 1층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철골구조, 조적조 건축주: 인천시
진행 이경은 기자 | 사진 박완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