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순정효황후 친가 철거위기…남산 '본뜬 집'만 남을 판
'큰아버지 윤덕영 집' 가능성도 있지만 보존가치 높아 이 한옥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두번째 부인 순정효황후 윤씨(1894~1966)가 1906년 황태자비로 책봉되기 전까지 살았다고 전해지는 집이다.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는 1910년 병풍 뒤에 숨어 어전회의를 엿듣고 있다가, 친일파들이 순종에게 합방조약에 날인할 것을 강요하자 내시가 들고 오던 국새를 가로채 치마 속에 숨겼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그러나 국새는 결국 친일파인 큰아버지 윤덕영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순정효황후는 1926년 순종이 승하한 뒤 불교에 귀의해 1966년 심장마비로 숨지는 순간까지 온화한 심성과 기품을 잃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순정효황후 친가에는 현재 6가구가 살고 있다. 황후의 집은 그간 많은 사람들을 거치면서 여기저기 뜯기고 헐렸다. 1996년 서울시는 너무 낡아 해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 집을 놔둔 채 건축양식만 그대로 본떠 중구 필동 남산골 한옥마을에 새로 지었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이렇게 버젓이 남아 있는 진짜 집을 버려두고 가짜 집을 다른 곳에 만들어 놓는 것은 제대로 된 보존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재개발로 진짜 집 자체가 완전히 헐리게 됐다는 점이다. 이 집은 현재 옥인동 주택재개발 정비 구역 안에 위치해 있으며 언제 철거가 시작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문화재위원인 김정동 목원대 교수(건축학)는 "순정효황후 친가는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지만 서민들의 삶이 그 속에 녹아 있다는 점에서도 보존해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며 "터만 남아 있어도 보존해야 할 판에 철거된다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실제로 이 집이 순정효황후의 친가인지 여부에 대해 그 진위마저 의심 받고 있다. 김수정 서울시 문화재과 조사연구팀장은 25일 "서울시가 최근 순정효황후 윤씨 친가로 알려진 한옥에 대해 문헌 조사를 실시한 결과 황후의 아버지 윤택영이 아닌 큰아버지 윤덕영의 집으로 그의 후처가 살았을 가능성이 제기됐다"고 말했다. 이순우 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도 "윤택영이 실제 살았던 집은 간동 97번지(현재의 사간동)로 알려져 있었다"며 "그러나 이곳 역시 소유자는 윤덕영으로 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남은 사료가 많지 않아 진위 여부를 확실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친일파 윤덕영의 집이라고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보존 가치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문화재 전문위원인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도 "건물의 가치를 따지는데는 누군가의 집인지도 중요하지만 건물 자체의 모습도 무척 중요하다"며 "옥인동 순정효황후 친가의 경우 벽체 구성과 소품 디자인, 디테일한 장식 등이 여전히 훌륭하게 남아 있어 지금부터라도 잘 보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자료출처: 한겨레 | 2010.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