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 본동 산104번지 달동네 '연탄길'
[탐방]거미줄 처럼 놓여 있는 골목길들
유태웅(dncmcons)기자
지난해 11월 하순. 모 정당의 대권후보가 산동네에서 수레에 연탄을 실어 나르는 모습이 TV뉴스 시간에 방영된 적이 있다. 매년 연말이면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앞장서서 보여주는 연말 불우이웃돕기 봉사현장은 늘 한해를 마감하는 연례행사처럼 그렇게 안방에 소개가 된다.

당시 TV화면을 통해 눈에 들어오던 곳은 재개발, 혹은 재건축이라는 명목으로 점차 사라져가는 이 시대 전형적인 달동네였다. 당시 소개되었던 이곳은 서울시 노원구 중계본동 산 104번지 일대로 불암산 끝자락에 둘러싸인 경사진 마을이다. 현재 약 1600여 가구 4000여명의 서민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 북서방향으로 경사진 대지에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는 마을의 전경
ⓒ 유태웅
▲ '원주 밥상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연탄은행'. 연탄 1장에 300원씩 후원할 수 있다. 이곳에서 연탄이 독거노인 등에게 배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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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태우고 남은 연탄들이 골목길가에 빼곡히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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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중계본동 104마을'로 통하는 이곳은 40년 전인 1960년대 중반부터 이주민을 중심으로 마을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곳은 서울시 노원구와 경기도 남양주군 별내면을 나누는 불암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동네 뒤쪽 산길을 따라 약 30분 정도만 가면 별내면 화접리 마을로 넘어갈 수 있다.

마을의 전체적인 배치는 북서방향으로 경사진 산허리를 따라 촘촘하게 가옥들이 들어선 전형적인 달동네다. 겨울이면 북서 계절풍의 영향을 그대로 받는 형국이다. 가옥과 가옥들은 채 1m도 되지 않는 시멘트벽돌 담벽을 사이로 얽히고설켜있는 상태다.

"거미줄처럼 놓인 골목길"

▲ 옆집과 옆집의 사이는 이렇듯 대부분 시멘트벽돌조 담벽으로 서로 밀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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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활동하지 않는 그룹의 흔적. 이들을 좋아했을 아이들은 지금쯤 얼마나 성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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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옥과 가옥사이로는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놓여있다. 요즘 같은 겨울철이면 골목길마다 다 태운 연탄들이 빼곡하게 쌓여있다. 이곳은 여전히 대부분 연탄불에 의지해 겨울나기를 해야만 하는 곳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골목과 골목사이로 조심스럽게 가다보면 문득 청각과 후각을 자극하는 것들이 있다.

어디선가 계피차를 끓이는 향기부터, 배운지 얼마 안 된 듯 어설프지만 은은하게 들려오는 아이들의 리코더 소리, 마치 제집을 침범 당하기라도 한 듯 외부인에게 경고하는 개들의 짖음, 가내수공업이라고 해야 할까, 허름한 집에서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둔탁한 기계음은 생존을 위한 심장의 고동소리처럼 들린다.

산과 맞닿아있는 달동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한 낡은 가옥 앞에서 할아버지 한분과 마주쳤다. 마침 할아버지가 힘겹게 끌고 올라 온 자전거에 실려 있던 물건을 보는 순간, 가슴이 저몄다. 장바구니에는 두부 한모와 1000원짜리 포장된 밑반찬이 들어 있었다.

▲ 이곳에서 마주친 한 할아버지의 자전거에는 두부 한모, 포장된 밑반찬 하나만이 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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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유공자의 집' 문패. 이곳 달동네에도 국가유공자는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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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중턱 산자락에는 '마을복지회관'이 들어서 있다. 새로 지은 2층짜리 건물로 이곳엔 공부방과 경로당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마을 한가운데 텃밭이 자리한 공터에는 예전부터 있었던 듯 허름한 경로당이 있었다. 새로 지은 건물은 낯설고 옛것은 익숙해서 일까? 이 허름한 경로당에는 대여섯 분의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고 있었다.

출입문가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신발들은 방안에서 들려오는 어르신들의 나지막한 대화에 참가한 어른들의 수를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경로당 옆에는 현대식 이동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이동화장실은 이 허름한 경로당과 묘한 대치를 이루고 있었다. 다 낡아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시멘트벽돌조 건물과 깔끔한 바탕의 현대식 이동화장실은 그렇게 서 있었다.

화장실 내부에는 다음과 같은 격언이 붙어 있었다. "相識이 滿天下하되, 知心能幾人고"(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 :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온 세상에 많이 있으되,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고)

▲ 허름한 경로당과 현대식 이동화장실의 묘한 배치
ⓒ 유태웅
이곳은 현재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8년 전부터 재개발 계획이 추진되었지만 현재까지 별다른 진척사항은 없다. 마을입구에 부착되어 있는 '대자보' 내용을 확인해 본 바로는 이곳도 재개발계획과 관련해 그동안 다양한 의견과 시행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계획안은 두 가지로 압축이 된다. SH(도시개발공사)에서 도시개발사업방식으로 진행하려는 재개발계획은 6만2천평 규모에 총 1900가구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다른 하나는 주택공사에서 추진하는 재개발계획으로 5만1천평 규모에 총 2607가구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개발계획안에서 가장 큰 이슈는 넓은 면적에 적은 세대로 쾌적한 APT단지로 탈바꿈하느냐, 아니면 좁은 면적에 빡빡한 APT단지로 만들어 결국엔 값싼 서민아파트로 만들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는 향후 개발추진위원회, 통합주민협의회, 해당 지자체와 주택공사, 도시개발공사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다.

이 마을 중턱에는 지난 1991년에 만들어진 '쌈지마당'이 있다. 산을 형상화시킨 작은 조각물과 8각형 해시계가 마당 한가운데 설치되어 있다. 여름철이면 동네주민들이 모여 바람도 쐬고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놀기에 좋은 마을의 작은 쉼터이다.

대부분 이주민들이 모여 형성된 달동네여서 일까?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8각형 해시계돌판에 각 방향별로 고향까지의 거리를 새겨 놓았다. 이곳은 자연스럽게 마을의 작은 쉼터이자,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출발점인 셈이다.

이곳에서 강화는 120리, 인천 70리, 신의주 890리, 평양 460리, 개성 150리, 부산 830리, 대구 600리, 청주 290리, 광주 680리, 대전 360리, 강릉 420리, 원주 220리, 속초 390리, 춘천 190리, 청진 1310리, 함흥 670리, 원산까지는 440리가 떨어져 있다.

달동네 연탄, 단지 겨울에만 필요한 것은 아닐 터

▲ '고향땅, 여기서 얼마나 되나?' 쌈지마당에 있던 해시계. 돌판에는 8방으로 고향까지 거리가 새겨있다.
ⓒ 유태웅
▲ 불암산 등산로 초입이기도 한 이곳 달동네 연탄길을 등산객들이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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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계본동 산104번지일대는 인근 아파트주민들이 불암산 산행에 나서는 주요 등산로 초입이다. 등산마니아들이 즐겨 이용하는 서울근교 5산 종주산행의 출발점이 되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주말이나 일요일이면 많은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이곳 달동네를 지나쳐 간다. 건강을 다지기 위해 산을 찾는 여유로운 발걸음도 있지만, 여전히 이 달동네에는 연탄 한 장으로 겨울날 하룻밤을 지샐 수밖에 없는 우리네 서민들과 독거노인들이 있다.

우리 시대 전형적인 달동네이자, '연탄길'인 중계본동 산104번지 일대 마을. 연탄은 단지 연말의 한 대목이나 겨울에만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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