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서울 은평뉴타운 개발 지역인 진관내동에서 한 아주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이제 좋은 아파트가 들어선다는데 좋으시겠어요?"
"좋긴 뭐가 좋다 그려? 돈이 있어야 가지, 돈이 있어야. 입에 풀질하기도 힘든데 말여."개발이 되면 동네 주민들에게 좋은 줄만 알았던, 세상 물정 모르던 내게 아주머니는 면박을 줬다. 당장 1000만원도 아쉬운 형편에 임대아파트 입주권이 나와도 입주금을 마련할 길이 없는 상황이었다. '달동네'에서 '전원형 생태도시'로의 탈바꿈은 10평짜리 집이 전부인 아주머니에게 무의미했다. 올해 하반기에 분양이 시작되는 은평뉴타운에서 파출부를 나가며 3남매를 키우던 이 아주머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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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사부필름 |
<1번가의 기적>은 코미디가 아니다솔직해지자. '개발'이라는 이름의 달콤함은 원주민에게는 씁쓸함일 뿐이다. 허름한 달동네가 전망 좋은 아파트촌이 된다고 해도 주민들은 기뻐하지 않는다. 입주금을 마련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애초에 그곳에 자리 잡게 된 것도 가난에 떠밀려서이지 않은가. 멸시받던 동네가 '유러피안 스타일', '전원도시' 같은 미사여구로 포장되는 동안 주민들의 대다수는 정든 곳을 떠나야 한다. 'OO동 재개발', 'OO마을 21세기 뉴타운으로~'라는 축하 플래카드는 그들에게는 퇴출명령이나 다름없다.
이 같은 달콤 씁쓸한 이야기가 영화 <1번가의 기적>에 녹아있다. <1번가의 기적>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장르가 코미디라고 뜬다. <색즉시공>에서 호흡을 맞췄던 윤제균 감독과 임창정, 하지원이라는 이름만으로 영화장르를 구분했다면 모를까, 내가 본 <1번가의 기적>은 가벼운 웃음보다 깊은 한숨을 뱉게 만드는 드라마다.
물론 용역깡패 필제(임창정)와 챔피언을 꿈꾸는 여성복서 명란(하지원)의 엉킴, 그리고 귀여운 사투리의 진수를 선보이는 꼬마들의 연기를 보고 있자면 저절로 폭소가 터진다. 다단계에 빠진 여인(강예원)과 커피 자판기를 운영하는 청년(이훈)의 러브 스토리도 잔잔하게 흐른다.
하지만 이 영화의 중심은 철거 동의서를 받아내려는 건달들과 철거 동의를 거부하는 주민들의 사투다. 사실 스크린에 투영되는 용역건달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비열한 거리>의 병두(조인성)도 출세를 위해 악착같이 산동네를 누볐던 것처럼, 검은 조직은 도시 재개발을 도와주고 땅장사꾼들한테서 돈을 받는다. '영화는 삶을 반영한다'는 말이 있듯이 <비열한 거리>나 <1번가의 기적>은 화려한 개발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의 모습을 들춰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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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땅값이 얼마인 줄 알아?"<1번가의 기적>은 섬뜩할 정도로 비극을 잘 묘사한다. 갈 곳을 잃은 아주머니가 분신하고, 아이들과 할아버지의 소박한 아침밥상은 포클레인의 손짓 한 번에 시멘트가루로 뒤덮인다. 마을에 들이닥친 용역직원들의 몽둥이질과 악다구니를 쓰는 주민들의 모습도 생생하게 펼쳐진다. 개발로 이익을 얻게 될 사람들과 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될 사람들의 대결이다. 그 와중에도 포클레인은 멈추지 않았다.
철거 장면뿐만 아니라 감독은 영화 전반에 걸쳐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중간 중간 웃음도 버무린다. 그렇지만 문제의식의 끈은 놓지 않는다. 건달 필제가 '엄마야 누나야'라는 동요를 부르고 있던 아이에게 던진 말이 압권이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야, 너희들 강변에 살고 싶구나, 강변 땅값이 얼마인 줄 알아?"동요의 강변은 현실에서는 더 이상 아무나 살 수 없는 곳이 됐다. 필제는 아이들과 흙바닥에서 땅따먹기 놀이를 하면서도 "땅따먹기가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이런 필제의 말이 전혀 웃기지 않은 것은 왜일까.
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되면서 세 가지 소리가 들린다. 무지막지한 포클레인 소리, 용역직원들과 주민들의 고함소리, 그리고 부서지는 집을 지켜보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다. 마치 상가에서 곡을 하듯 울음소리는 구슬프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곳에 불청객처럼 찾아온 눈물이다. 생경하기까지 하다. 영화는 '개발'이 주민들의 아픔을 먹고 자라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다.
이미 주민들에게 마음을 뺏긴 필제는 선뜻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필제는 철거 현장을 바라보던 아이들을 뒤돌려 세운 뒤 "좋은 일인데 왜 울어? 헌집 부수고 새집 주려고 그러는 거야"라고 달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동요를 부르게 한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과연 새집을 주려고 그러는 것인가. 도시개발은 원주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개발이 낳는 돈을 위한 것이다. 헌집은 새집이 되지 않고, 주상복합 아파트가 되고 빌딩이 된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기에 아이들의 노랫소리는 더욱 구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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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가의 기적>이 '대한민국의 기적'이 되기를...그렇다면 <1번가의 기적>에서 말하는 기적은 무엇인가. 제목도 비슷한 영화 <8번가의 기적>처럼 외계물체가 부서진 집을 '짠'하고 원래대로 만들어 주는 것일까. 아니다. <패밀리맨>처럼 이 모든 게 꿈이었을까. 아니다. <1번가의 기적>은 좀 더 현실적인 해피엔딩을 그려낸다. 울고 웃고 또 다시 울다가 결국 주인공들은 각자 원하는 것을 이뤄낸다.
특히 가난을 이겨낸 여성복서 명란의 인생역정은 희망을 준다. 고되고 힘든 삶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이루어내는 명란의 꿋꿋함과 열정은 해피엔딩을 만들어낸다. 동양챔피언이던 아버지를 위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명란의 펀치는 모든 슬픔을 날려버린다.
하지만 해피엔딩을 기적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함이 있다. <1번가의 기적>에서의 진짜 기적은 필제의 변화다. 피도 눈물도 없던 필제가 따뜻함을 찾아가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필제는 동의서에 도장을 받기 위해 주민들을 협박한다. 그런 필제가 '9시뉴스 기자'를 사칭해 수돗물을 나오게 하고 약을 마신 아저씨를 들쳐 업고 뛰게 된다. 아이들로부터 '슈퍼맨'이라는 칭송을 듣는 필제는 점점 마을 주민들에게 동화돼 간다. 그리고 철거현장에서 주민들 편을 들었다가 몰매까지 맞는다. '개발'의 노예에서 생계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 편에 선 필제의 모습에서 기적을 발견한다.
우리는 지금 '개발'의 달콤함에 취해있다. 부동산 광풍에 눈이 멀었다. 우리 사회가 '개발'로 생계를 위협받는 사람들의 아픔에 더 귀 기울이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꿈일까. 필제에게 나타난 기적이 우리에게도 나타날 수 있을까.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1번가의 기적>이 '대한민국의 기적'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노래를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