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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문을 열면 텃밭이 바로 보인다. 여기엔 상추, 파, 부추, 고추 등이 살고 있다. |
ⓒ 송상호 |
우여곡절 끝에 현재의 시골 흙집에 자리 잡았는데, 알고 보니 낙원이 따로 없다 싶다.(관련기사: '내가 마음을 비우니 모두가 행복하더라')
아침에 참새, 꾀꼬리, 까치 소리 등을 들으며 잠을 깨는 즐거움을 아는가. 그것도 우리의 잠을 깨우는 새가 날마다 똑같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어떤 날 아침은 참새가, 어떤 날 아침은 제비가, 어떤 날 아침은 뻐꾸기가, 어떤 날 아침은 까치가 잠을 깨운다는 거 아닌가. 때론 여러 종류가 어우러져 소리를 내기도 한다. 물론 지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인간인 내가 알 리 없고 자신의 주관적인 느낌으로 잠을 깨워준다고 생각하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호지 문을 열면 뒷마당 텃밭이 바로 보인다. 문을 열면 흙냄새와 풀 냄새가 나의 코로 날아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든다. 또한 밤새 이슬을 먹은 상추와 고추들이 영롱한 얼굴을 하고 인사한다. 언제든지 그 텃밭에서 상추를 캐고 고추를 따내어 된장에 쌈 싸먹고 찍어 먹는 맛은 얼마나 꿀맛인지. 거기에서 부추나 파를 베어낸 후 총총 썰어 계란에 풀어 계란찜을 만들어 주면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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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에 모든 방문은 모두 창호지 문이라는 것과 구멍이 숭숭 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이들이 득실거리기에 아예 구멍을 막지 않고 살다보니 바람이 돌아다녀 시원하기 그지 없다. |
ⓒ 송상호 |
우리 집 방문들은 하나같이 전통 창호지 문이다. 창호지 문은 방안의 습도를 자동 조절한다는 거 아는가. 습도가 높으면 창호지가 습기를 빨아들였다가 습도가 낮으면 습기를 뿜어낸다는 사실 말이다. 방마다 있는 창호지 문은 아이들이 많이 들락날락하는 바람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그 때문에 신난 것은 바람이다. 그 구멍으로 들락날락하기 좋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그 바람에 '시원하다'는 특혜를 누린다.
바깥 외벽도 흙집이거니와 방안의 벽도 우리가 이사 오면서 '황토 페인트'를 칠했으니, 그야말로 이름 그대로 안팎이 흙집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방에나 거실에 앉아 있으면 하나도 더운 줄 모른다. 시원하기도 하겠거니와 문을 열어 놓으면 산바람까지 자유로이 들락날락하니 말해서 무엇하랴.
아직 선풍기 하나 끄집어 내놓지도 않았다. 더아모 아이들과 우리 집 식구들이 전혀 더위 때문에 불편함을 못 느끼니 선풍기가 필요하다고 아무도 말을 끄집어내지 않은 게다. 사실 산이라서 그런지 저녁과 새벽엔 춥기까지 하다. 그런 집 안에서 홀로 앉아 읽고 싶은 책을 대하며 독서의 세계에 빠져드는 즐거움을 어디 가서 또 누릴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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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아모 아이들이 마당에서 달고나 축제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서 꼬맹이들은 종종 물놀이 한 판을 벌이기도 한다. |
ⓒ 송상호 |
더아모 거실에 설치해 있는 '가요반주기'엔 아이들이 놀러 와 수시로 노래를 불러댄다. 앞마당엔 아내가 좋아하는 꽃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다. 바깥 수돗가는 항상 꼬맹이들의 물놀이터가 된다. 마당 한쪽엔 항상 '빨래대'가 서 있고, 큰아이들은 그 빨래대 앞에서 심심하면 '달고나' 축제를 벌인다. 집안에서 하면 냄새가 난다는 아내의 강력한 충고 때문에 마당에서 벌인다. 이러니 항상 우리 집은 잔치분위기다.
밤이면 마당 의자에 앉거나 돗자리에 앉아 별을 보는 즐거움 또한 쏠쏠하다. 시골 밤하늘은 유난히도 별이 초롱초롱하다. 천문대 관계자가 일러주기를 시골엔 전기 불빛이 많이 없기에 별빛이 밝다고 한다. 도시의 밤엔 각종 불빛이 좀 많은가. 그리고 때로는 비좁은 시골집에 아이들이 여럿이 와서 잠을 자면서 밤늦게까지 수다를 종종 떨기도 하니 아이들에겐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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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아모의 집 거실에서 아이들이 가요연주기를 통해 신나게 노래 부르고 있다. 여기에서 이런 일은 일상 생활이다. |
ⓒ 송상호 |
하지만 우리 집에도 약점이 있다. 겨울에 웃풍이 심해 춥기도 하고, 방도 그렇게 넓지 않아 아이들이 놀기에 비좁기도 하다. 바람이 많이 불거나 비가 많이 올라치면 늘 집 주위와 집 상태를 살피며 긴장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지붕엔 페인트칠이 안 되어 있고,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새어 들어올지도 모른다. 가끔 오는 택배와 통신사 아저씨들이 초라한 우리 집을 보고 젊은 나를 보며 한 번 더 쳐다보기도 한다. 그런 데다가 5년 후이면 집주인에게 비워 줘야 할 집이기도 하다.
그래도 아무려면 어떤가. 오늘 하루 즐겁게 사는 것으로 족한 것을. 오지도 않을 미래를 두고 미리 걱정하고, 오지도 않은 불행을 미리 예견하여 보험을 몇 개나 들어 놓고도 여전히 안심하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을. 흙집이 주는 약간의 불편함보다 지금 우리에게 흙집이 주는 풍성함은 비교도 하지 못할 만큼 훨씬 큰 것을.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비좁으면 비좁은 대로 사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사실 우리 더아모에 놀러 오는 아이들과 우리 식구들 중 어느 누구도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없긴 하지만 말이다. 아이들은 오히려 좋다고 하니 더 말해서 무엇할까.
그렇다. 오늘 우리가 머물고 이야기하고 누릴 수 있는 조그만 흙집 하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더 없는 행복인 게다. 어차피 내일은 우리의 것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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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더아모의 집 전경이다. 그 마을에서는 외관상 제일 초라한 집이지만, 실제로는 제일 풍성한 집이다. |
ⓒ 송상호 |
2007 6 12 오마이뉴스 송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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