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을 느끼며 산다 한옥 - 건축가 조정구의 한옥 예찬

한옥은 고리타분하다? 편리·빠름을 앞세우는 디지털 논리론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한옥엔 이러한 잣대로 잴 수 없는 ‘무엇’이 존재한다. 서대문 네거리. 고층빌딩군 뒤켠에 터를 잡고 45년 세월을 견뎌온 기와집을 보노라면 그 ‘무엇’이 물씬 느껴진다. 그건 인간의 체온이며 자연의 숨결이자 곰삭은 삶의 기품 같기도 하다. ‘한옥 전도사’ 조정구 대표(42·구가건축)의 보금자리다. 조 대표는 북촌가꾸기 사업에 참여해 한옥 10여채를 개·보수했고 최근에는 경주에 국내 최초의 한옥호텔 라궁을 설계한 주인공이다. 아날로그의 온기로 훈훈한 그의 집을 들여다보았다.

"불편하지 않으세요?"
조 대표가 이곳에서 살아온 5년간 가장 흔히 들은 질문이다. 그의 집은 여름엔 모기장이 필수고 겨울에는 웃풍 때문에 내복을 입고 지내야 한다. 높다란 대청마루의 천장을 청소하려면 아내 김영희(39)씨 혼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잠깐 동안의 번거로움에 지나지 않는다. 이젠 가족끼리 여행을 가 있어도 문득문득 내 집이 그리울 정도다. 마당 깊숙이 파고드는 햇살과 대문의 삐걱임이 눈에 귀에 선하다.

건축가의 집이라고 하면 멋들어진 외견과 세련된 인테리어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조 대표의 한옥은 소박한 시골집에 가깝다. 보여지는 집이 아니라 생활하는 집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건축 철학이다.
아침이면 반쯤 감긴 눈을 비비며 남우(7)·순우(5)·연우(2) 세 형제가 건넌방에서부터 대청을 지나 아빠가 있는 안방으로 터벅터벅 줄 지어 걸어온다. 활짝 열린 문을 따라 햇살이 비집고 들어와 대청마루의 벽을 휘감는다. 강아지 두기가 뜨락에서 대청을 향해 달려온다. 억만금으로도 살 수 없는 아침 정경이다.




남편 생각 "햇살 드리운 마당, 가족·친구와의 소통 공간"

마당이 넓고 아침에 햇볕이 잘 드는 집을 찾아 6개월을 헤맸다. 막연히 한옥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운 좋게도 마음에 쏙 드는 집이 나타났다. 그렇게 생활한 것이 벌써 5년째. 시멘트 바닥이었던 곳에 오석을 깔아 운치를 살린 마당은 가족과 친구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아이들은 마음껏 자전거를 타고 뛰고 구르며 장난 친다. 지인들은 종종 고기를 사 들고 와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고 문간방을 차지하기도 한다.

집 개조라곤 안방-주방-건넌방을 통하게 하는 문을 만들고 마당에 오석을 깔고 장독대 문짝을 교체한 것이 고작이다.
화장실이 바깥에 있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해 주방 공간 한쪽에 가벽을 세워 실내에 따로 만들었다.
 건축가로서, 거주자로서 한옥은 편리하게 고쳐 살기보다 ‘세월’을 그대로 간직한 채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내 생각 "가족들이 일상을 포근히 감싸주는 울타리"

대청마루, 방 4개, 욕실 2개, 다용도실 1개인 우리집은 잔손이 많이 간다. 하지만 주방의 문을 양쪽으로 펼쳐 열면 마당이 한눈에 들어오고 자연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집안 일을 하고 아이들을 돌볼 수 있다는 큰 즐거움이 있다.
나무로 된 기둥과 햇살을 집안에 나눠주는 교창, 창호지가 발린 문을 보고 만지면서 자라는 아이들은 감성도 풍부해진다.
처음 이사했을 때는 도둑이 들 것 같아 한동안은 남편에게 일찍 들어오라고 전화했었다. 하지만 둘째, 셋째 때는 산후조리를 안방에서 했을 정도로 편안해졌다. 내년 4월 넷째 출산 후 몸 조리도 역시 집에서 할 생각이다.
이제는 집을 정말 사랑하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아이들을 낳고 쉬었던 방,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놀던 대청마루, 토마토와 채소를 기르는 장독대, 다섯 식구가 함께 자는 건넌방은 보물 같은 추억의 장소다.

프리미엄 하현정 기자 happyha@joongang.co.kr
사진=프리미엄 황정옥 기자 ok7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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