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을 이야기

건축가 조정구 소장이 이끄는 구가도시건축이 새로운 사무실로 이전했다는 우편물이 날아들었다. 북촌에 자리한 새로운 사무실에서 그의 건축의 출발점이자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현대 한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20120703_hanok_01.jpg

 

미국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얘기할 때 그의 대표작인 낙수장을 건너뛸 수 없듯이 건축가 조정구를 얘기할 때 경주에 있는 집합식 한옥 호텔 라궁을 빼놓을 수 없다. 회랑을 중심축으로 각각의 객실과 연결되고 객실로 들어서고 나면 한옥의 마당과 누마루에서 사적인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 이 마당에는 전통 한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노천 온천이 마련돼 있다. 라궁은 조정구 소장의 한옥 데뷔작은 아니다. 허나 다수의 사람이 이용하는 호텔을 한옥으로 지었다는 점, 도시 한옥 한 채를 유닛으로 집합 구성한 건축적인 시도와 한옥에서 노천욕을 즐길 수 있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한 것이 건축계에 신선한 파문을 일으키며 무명의 건축가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2007년에 라궁을 발표한 이후 그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한옥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한옥 건축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게 됐어요. 선배의 제안으로 서울 북촌에 있는 도시 한옥을 개축하고 그 과정에 대해 기록하면서 제가 나아가야 할 건축의 방향성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한옥을 설계한 경험이 없어서 기존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았어요. 그리고 라궁을 설계하면서 한옥에서 볼 수 없었던 건축적인 접근을 시도했지요. 그 구상은 주거용 도시 한옥에서도 원칙처럼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옥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인 마당입니다. 라궁에서의 마당은 노천 온천탕으로 활용됐고, 한옥 레스토랑에서는 밝은 햇살이 드는 아트리움으로 탄생했습니다. 주거용 한옥에서는 마당을 중심으로 가족이 소통하고 자연과 공존할 수 있도록 각 공간과 긴밀한 관계를 맺습니다.”

 

20120703_hanok_02.jpg

 

조정구 소장은 최근에 완공된 가회동 한옥 ‘11k’를 예로 들었다. 좁고 깊은 골목 끝에 위치한 ㄷ자 구조의 한옥은 1940년대 후반에 지어진 것이었다. 설계의 핵심은 부모와 성장한 자녀의 영역을 독립적으로 분리하고 주방과 가족실, 마당 같은 공용 공간에서 소통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있었다. 또한 대청에서 보이는 북한산의 풍경을 어떻게 끌어들일지도 중요했다. 조정구 소장은 ㄷ자 구조의 날개 부분에 부부 침실과 자녀의 침실을 배치하고 각각의 공간에서 짧은 동선을 따라 주방으로 접근할 수 있게 설계했다. 가족실 및 쪽마루에서 주방을 향해 걸터앉거나 머무를 수 있도록 주방 바닥을 파서 무릎 높이의 단차를 만들었다. 문을 닫으면 각각의 공간은 폐쇄적으로 분리된다. 좁고 어두운 욕실은 공간을 확장하고 천창을 내 채광을 확보했다. 북한산이 보이는 대청과 툇마루 사이에는 들문을 설치했다. 이 들문은 툇마루에서 보이는 다른 건물과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담장보다 높은 위치에 가로로 길게 낸 것이 특징이다. 또한 아들 방에서 연결되는 낮은 다락방의 벽에 유리를 삽입해 한옥 내에서 시원한 개방감을 갖도록 했다.

‘11k’가 채광과 개방감, 바람의 소통을 중요시한 집이라면 삼청동의 ‘하선재’는 최근의 주거환경에서 점점 중요시되는 다이닝 공간에 대한 탐구를 볼 수 있는 집이다. 역시 ㄷ자 구조의 중심에 배치된 주방은 방 하나를 터서 커다란 다이닝룸을 겸하고 있고 쪽마루가 아닌 내부의 긴 복도를 통해 동선이 연결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부부 침실에는 누마루를 개축해 독서 공간으로 만들고 한지 문으로 나뉜 드레싱룸도 만들었다. 한마디로 전통의 주거 형태를 띤 것뿐이지 내부는 현대적인 지금의 주택과 다를 바가 없으며 오히려 누마루와 마당이라는 한옥의 운치까지 더해졌다.

20120703_hanok_03.jpg

 

“10여 년에 걸친 한옥 프로젝트를 통해서 저 스스로도 현대 한옥이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전통 목구조와 다른 구법의 결합, 마당의 실내화 등 한옥 목구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옥에서도 보수와 진보를 오가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특별하고 유난한 건축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독주택, 다세대와 다가구 주택, 근린 생활 빌딩처럼 우리 삶과 가까운 건축을 선호하는 그는 자신의 건축 세계를 통해 사람들이 ‘삶의 형상을 찾아가기’를 희망한다. “위대한 건축은 그 시대에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 지어진 건물에 붙일 수 있는 최고의 수식이자 평가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않고 선구자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건축물이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단촐하게 지었지만 완벽한 모듈식으로 구성된 창덕궁 연경당을 예로 들었다. “아름다운 질서의 조화를 볼 수 있는 곳이지만 지금 연경당과 똑같은 한옥을 짓는다고 해서 그 건축물이 위대한 건축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옥은 전통적인 주거 형태임은 분명하지만 현대적인 건축물이 될 수 있습니다. 도시 한옥이 갖는 한계는 오히려 창의적인 건축을 유도하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정구 소장은 매주 수요일에 도시 답사를 진행하고 있다(벌써 570회를 넘겼다). 도시를 스캔하는 것처럼 동네를 답사하고 조사하고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집과 사람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시작한 한옥 건축을 통해 한 채의 한옥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가 골목을 밝히고 동네를 변화시켜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그래서 그가 만들어갈 앞으로의 변화가, 전통적이지만 오히려 더 현대적인 한옥의 진화 방식이 궁금하다.

20120703_hanok_04.jpg

 

에디터 정수윤 | 포토그래퍼 전성곤

 

분류 :
Project News
옵션 :
:
:
:
:
List of Articles
제목 이름
Project News 임재양 외과, 2012 목조건축대전 준공부분 수상 imagefile gugaua
Project News [한국경제] 박원순 시장의 "맛있는 만남" 인터뷰가 누리에서 진행되었습니다. imagefile gugaua
Project News 대구 임재양 외과, '제 21회 대구시 건축상' 금상 [1] imagefile gugaua
Project News 성연재, '제30회 서울특별시 건축상' 우수상 수상 imagefile gugaua
Project News [메종] 멈추지 않을 이야기 imagefile gugaua
Project News project가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imagefile gugaua
Project News <contemporary han-ok _ 현대 도시에서 함께 살다> 展 imagefile gugaua
Project News [한겨레 21] 살아 있는 집에 살다 imagefile gugaua
Project News 가회동 소안재-제 29회 서울 특별시 건축상 우수상 수상 imagefile gugaua
Project News [조선일보] 여기는 호텔입니다. imagefile gugaua
Project News [조선일보] 대통령의 집, 전통 종합선물세트 되다… 翠雲亭 imagefile gugaua
Project News monocle 7/8 월 호에 구가도시건축이 소개되었습니다. imagefile gugaua
Project News [The Korea Herald] Architect dispels myths about hanok imagefile gugau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