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조정구의 서울 진(眞)풍경 ⑦ 홍대 앞 서교 365

기찻길 옆 오막살이, 지금은 유쾌한 청춘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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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홍익대 앞 서교 365. 서교동 365번지라는 이곳 주소가 그대로 이름이 됐다. 2006년(위)과 2012년(아래)의 입면 사진이다. 6년 새 변화가 현저하다. 감자탕집이 액세서리점으로 바뀌는 등 길가 점포들이 젊은이들의 취향에 가까워졌다. [사진 구가도시건축]

 

칙칙폭폭 칙칙폭폭, 오늘도 기차는 가게를 싣고 서울 홍익대 앞을 달려간다.

서교 365. 이름은 몰라도, 홍대 앞을 찾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그 앞을 지나고, 그곳 가게에 들러 봤을 것이다. 고깃집이 많아 ‘굽고 싶은 거리’라고도 불리는 ‘걷고 싶은 거리’ 바로 맞은편, 넓은 주차장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 2,3층 높이의 건물이 길게 이어진다. 폭 2m에서 5m, 길이 250m에 달하는 이 집합체를 건물로 이루어진 벽이라 해야 할지, 가게들을 뭉쳐 만든 ‘가게덩어리’라 불러야 할지 알 수 없다.

그저 이런 게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불규칙하게 뚫린 크고 작은 창들에, V자 모양의 철재 계단이 매달린 낡은 벽면 아래로, 형형색색 서로 다른 차양과 간판의 가게들이 빽빽이, 그리고 끝없이 늘어서 있다.

 기차가 달리려면 평평한 선로를 깔아야 하는데, 원래 땅에는 기복이 있어 그 사이에 둑이 생긴다.

htm_20120416235334a010a012.gif 서교 365는 바로 그 뚝방, 즉 철둑 위에 세워진 집들이다. 1924년 일제강점기, 당인리 화력발전소가 세워지면서 연료인 석탄을 실어 나르는 선로가 놓였다. 선로는 지금의 큰길인 ‘주차장길’을 따라 용산에서 발전소로 향했는데, 70년대 들어 옆에 붙은 좁은 철둑 위에 하나 둘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76년 석탄에서 가스로 연료가 대체되면서 선로는 사라지고, 철둑을 따라 길게 늘어선 건물들은 운행을 멈춘 기차처럼 그 옆에 남게 됐다. 지금도 서교 365 위쪽 ‘죠스 떡볶이’ 앞에 가면 간이역 플랫폼의 흔적을 볼 수 있다.

 14일 오후 서교 365에 갔다.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서 왔을까 절로 궁금해진다. 1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청춘들이다. 이 화려한 거리에 불 밝힌 것은 전기가 아니라 젊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교 365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라 말해왔던 ‘떠 있는 V자 계단’에 용기 내 올라가 본다. 계단은 생각보다 높다. 계단 위 검고 어두운 공간 끝에 붉게 물든 밤하늘이 보인다. 다 올라 앞으로 가면 철재 계단이 가운데 참을 두고 양쪽 옥탑으로 갈라진다. 마징가 제트 가슴의 V자 모양이다.

 2006년 조사 후 6년 만에 서교 365를 둘러봤다. 지나다가 늘 궁금해서 올려다보던 ‘no name no shop’의 커다란 유리창은, 길다란 창들로 나뉜 ‘salon de red’란 와인바가 되어 있었다. 문래동으로 옮긴 건 알지만 여기서 볼 수 없는 것이 섭섭하다. 그 동안 많은 작업실과 정든 가게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가게는 54개나 늘어 124개가 됐다.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는 집은 모두 9개뿐이다. 살아남은 가게들이 세월의 풍파를 잘 헤쳐가기도 했지만, 그 위치가 위층(2,3층)이거나 입구가 상대적으로 한적한 시장길(좁은 길) 쪽에 있어 ‘여러 가게로 잘게 쪼개지는 압력’을 피했던 거라 여겨진다.

 다음 날 가족들과 다시 이곳의 곱창집을 찾았다.

곱창이 익는 동안, 막내 윤우와 손잡고 서교 365를 따라 산책을 다녀오니 아이들이 동그랗게 눈을 뜨곤 ‘아빠, 정말 대박이야. 여기 다락 있어. 아빠는 모르지?’ 란다. 곱창 구워먹는 테이블 바로 옆으로 올라가는 계단엔 빨간 철재 난간이 단출하다. 노릇하게 익은 곱창을 한 입 집어먹곤, 아이들을 따라 장독대 같이 생긴 계단을 올라간다. 네댓 명이 앉아 먹을 수 있는 딱 그만한 크기와 높이다. 예전, 가게와 살림을 같이 하던 시절 기거하던 방으로 쓰던 것인 듯하다. 다음에 오면 꼭 다락에서 먹으리라 결심한다.

 도시의 우연과 필연, 삶의 절박함과 기발함이 모인 서교 365의 ‘삶의 형상’에서 많은 걸 생각하게 된다. 처음엔 철둑에 자리잡은 집과 가게들로, 다음엔 허름한 공간이나마 창작할 수 있는 작업실이나 친밀함을 나누는 아지트에서, 이제는 작고 유별난 가게들이 모인 홍대의 상징적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자본이 모여 변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서교 365의 가장 큰 매력은 낡고 허름하고도 그윽한 ‘그 시간의 누적’에 있다는 사실이다.

 서울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 로비에선 다음 달 6일까지 홍대 앞 서교 365를 주제로 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박물관에서 서교 365와 같은 일상의 도시문화자산을 전시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제까지 살아왔던 우리 삶의 모습을 긍정하고, 도시의 시간과 부단한 삶의 노력이 만든 우리 도시의 자생적 에너지를 보여주려 했다. 이런 생각이 보는 이들에게로 잘 전달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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