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1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연재기사입니다.
물결 같은 기와 너머 … 보인다 서울의 하늘
조정구의 서울 진(眞)풍경 ② 계동 한옥

사랑채 누마루 지붕 아래 펼쳐진 서울 계동의 전경이다. 기와 지붕 너머 동네 집과 나무들이, 멀리는 인왕산과 북악산이 보인다. 북촌은 근대 도시 서울의 풍경을 간직한 곳이다. 공간을 두루 볼 수 있도록 파노라마로 여러 장을 찍어 이었다.
서울 북촌 한옥마을. 이제 이곳에서 데이트 한 번 해보지 못한 커플이나 골목 한 번 누비지 않은 일본 관광객은 없을지 모른다. 오히려 사람이 너무 찾아와 걱정이고, 부자들이 한옥을 사들여 썰렁한 동네가 될까 걱정이다. 하루하루 변모를 거듭하며 밝아지고, 들뜨고, 어수선해진 곳이 바로 삼청동·가회동 길이다.
올 들어 가장 추웠던 설날, 가족들과 북촌에서 지내기로 했다. 하룻밤 자보며 동네의 속내를 느끼고 싶었다. 삼청동·가회동·계동·원서동·재동·안국동에 이름도 낯선 팔판동·사간동·소격동·송현동·화동으로 11개나 되는 동 중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계동. 그것도 135번지 언덕 위 작은 사랑채였다. 지금은 게스트하우스가 돼 빌릴 수 있었다.

지난해 10월 실측해 그린 계동길의 입면. 한옥 문간채 미용실부터 방앗간, 복덕방, 철물점, 길목 수퍼, 교회, 그리고 48년 된 목욕탕까지. 나지막한 경사로에 동네다운 가게들이 건재하다. [구가도시건축]
계동길을 오르다 오른쪽으로 꺾어, 작은 한옥이 나란히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흙이 드러나는 너른 마당이 나오고, 기다란 문간채가 마당을 ‘ㄱ’자로 둘러싸고, 그 뒤로 큰 나무들이 서 있다. 대문을 지나면, 어른 키보다 조금 높은 석축(石築)이 마주하고, 왼쪽으로 투박한 돌계단이 보인다. 제 짐을 들고 씩씩거리며 계단을 오르던 큰애(11)와 둘째(9)가 고개를 들고는 ‘와~’하고 탄성을 지른다. 하늘로 가지를 뻗은 나무들, 시원한 선을 그리며 지붕을 드리운 사랑채가 나타났다. 물결처럼 펼쳐진 기와지붕들 너머로 멀리 인왕산과 북악산이 보인다. 작은 집이 품은 풍경의 용량이 어마어마하다. 서울에 이런 곳이 다 있구나!
북촌의 한옥은 1233채로, 서울 한옥의 10% (2008년 조사)에 달한다. 이곳 한옥을 조선시대의 오래된 집들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대개는 1930년대부터 지어진 것이다. 조선 말,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유지되던 권문세도가의 큰 땅이나 임야가 쪼개져 중소규모의 한옥이 들어섰다. 도시로 사람이 몰리고, 자본력을 가진 주택경영회사가 등장하며 벌어진 개발의 풍경이다. 이들 한옥은 이전 것과 달리 마당을 가운데 두고 주변을 채우듯 들어선 컴팩트한 모양이다. 수없이 많은 한옥이 온 땅을 덮듯 지붕의 물결을 이루며 들어선 것이 당시 북촌의 풍경이자, 도시 한옥이 점령한 근대도시 서울의 풍경이었다.
밤이 다가오자 북촌의 고요한 정취는 더욱더 선명해졌다. 멀리 송아지만한 개가 짖고, 계동길을 따라 올라가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온다. 북악능선으로 산을 타듯 하얀 불빛이 성곽을 따라 빛나기 시작했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 산들이 검은 그림자가 될 때까지 누마루에 앉아 있었다.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는 걸 이렇게 느긋이 본 건 참 오랜만이다.
지도로 보는 계동길은 곧아 보이지만 길 위에 서면 저 끝이 보일 듯 말 듯 굴곡을 이루고 있다. 골짜기를 이루고 하천이 흘러 생긴 흔적이다. 굽이치는 옛길은 지금도 그 폭 그대로고, 주변의 건물도 나지막해 정겹고 따스하다. 동네의 다른 말 ‘고을’은 골짜기의 ‘골’에서 유래했다. 골이 졌으므로 사람들은 그 주변을 하나의 공간으로 생각하고 동네를 이뤘다는 게다. 북촌에서 보면 계동과 가회동이 그런 ‘한 골짜기 한 동네’를 이루는 셈이다. 다만 가회동은 길을 넓히며 동네가 동서로 나뉘어 버려 아쉽다.
계동에는 또 동네다운 가게들이 건재하다. 한옥 문간채에 자리한 미용실, 참기름집 간판을 단 방앗간, 작은 복덕방, 앞과 옆으로 물건을 가득 쌓은 철물점, 길목의 수퍼와 교회, 그리고 목욕탕이 있다. 64년부터 장사를 해온 계동 한가운데의 중앙탕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온 가족이 들어가 목욕을 했다. 돌아와 모두들 ‘가장 기억에 남은 일’로 꼽았다.
북촌은 나를 건축가로 성장시킨 곳이다. 2001년 처음 설계를 하기 위해 오래된 한옥을 봤을 때의 막막함은 지금도 생생하다. 기울어진 기둥, 비바람에 부식된 문짝, 여기저기 덧단 공간과 알 수 없는 부재와 명칭들. 이렇게 낡은 것들이 과연 좋아질 수 있을까, 하나씩 고쳐서 언제 다 동네가 살아날 수 있을까 회의마저 들었다. 하나 둘 한옥을 설계하고 고쳐가면서, 사람은 늙어가지만 집은 다시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음을 알았다. 비뚤어진 것이 바로 서고, 원래 모습을 되찾고, 현대의 생활을 담아내면서 하나하나 집들이 좋아지고, 골목이 살아나는 걸 보았다.
첫 한옥 작업을 했던 11번지 그 장소에 1991년 건축가 6인이 주거공간을 제안한 프로젝트가 있었음을 알게 됐다. 당시 많은 주민이 몰려 큰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제안엔 골목과 마당, 장소의 기억을 다루는 흥미로운 개념이 많았지만 한옥을 살리며 풀어보는 안은 없었다. 처음부터 그건 전제가 될 수도 없었다. 2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러나 지금 북촌에서 한옥을 고치고 사는 것을 가치 없다 하는 이는 거의 없다. 오히려 한옥과 골목의 멋에 사람들이 살고 싶은 동네로, 북촌은 옛 명성을 되찾는 분위기다.
한옥 작업을 테마로 하는 현대 건축가들이 나타나고, 현대 한옥들이 곳곳에서 태어나고 있다.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과거 우리가 버렸거나 살아남지 못할 거라 믿었던 우리 도시의 역사 환경과 생활 속의 건축이 새로운 의미로 부활하고 있다.